상계역에 도착하니 8시. 김밥 2줄을 준비하고 혹시나 해서 아주머니께 길을 물었다.

기존의 지식은 머리에서 사라지고 지시대로 움직이다보니 아뿔사 반대 방향(수락산)으로 가게 되었다.

처음부터 10분정도 알바하게 된 셈이다. 시작이 찜찜하다.

시멘트 길로 공원을 지나 등산로에 들어서자 내 위치가 등산로 4코스이다.

조금 오르자 길 옆 넓은 바위 위에 타원형의 조그만 바위가 길쭉하게 솟아 있다.

불암산 전설과 내력 중에 불교, 스님과 관련된 사실은 있지만,

의성어와 관련된 사실은 없는데도 생김새가 '불알'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암정에서 준비운동을 하고 등산을 위해 재정비했다.

공원에서 할 예정이었으나 초반 알바로 당황해 아무것도 못했던 것이다.

능선 길에 오르니 시원한 바람과 함께 뒤로 상계동의 성냥갑 아파트들이 즐비하다.

불암산 정상에 오르니 9시 40분. 다른 산에서 보지 못했던 특이한 장면이 있었다.

하나는 태극기가 휘날리고 있고, 또 하나는 정상 표지판 옆에 기독교 서적이 얹혀 있었다.

(김용섭의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 드립니다' 확실치는 않음)

우리민족의 과거의 아픔과 현재의 종교 간의 갈등을 보는 것 같았다.

정상 바로 아래에 있는 '두꺼비바위'

정상에서 덕릉고개로 가는 계단 앞에 있는 '쥐바위'

 
 
불암산 대표적인 '거북바위'가 없다.
아이스크림 파는 아저씨에게 물으니 아뿔사 또 코스를 잘못 잡았다.
정상적인 코스로 왔다면 중간에 보고 왔을 것이라는 것이다.
거북바위는 포기.
 

10시경에 덕릉고개를 향해 출발했다.

돌산과는 어울리지 않게 흙으로 된 오솔길로 평온한 길이다.

10시 50분경에 생태이동로에 도착하여 곧바로 수락산 정상을 향했다.

우측에 덕릉예비군 훈련장이 있다.

철책이 이중으로 있고 경고문 내용도 살벌하다.

이들보다 더한 긴장감을 주는 것이 철책 그물망 사이사이에 있는

국방색 빈 깡통들과 빨간색과 흰색으로 칠한 돌맹이들이다.

불암산의 태극깃발과 더불어 느낌이 묘해진다.

초입에 철쭉이 피어 있지만 향이 없다.

조금 지나니 아카시아 향기가 진하다.

더 올라가니 솔향기가 은은하다.

아늑하고 한적한 등산로에 철책만 없다면 금상첨화일 것 같다.

6시 반에 아침을 먹었으니 11시 반경에 김밥을 먹을 예정이었다.

마침 주변에 전망 좋고 그늘진 넓은 바위가 있어서 휴식 겸 김밥을 먹었다.

다른 일행들이 지나가면서 나눈 대화가 여기서 식사하면 정상을 못 간다고 한다.

순간 긴장해서 먹던 김밥 한 줄만 먹고 식사를 끝냈다.

위로 올라갈수록 등산로가 거의 암반(화강암)으로 되어 있다.

등산로 옆으로 흔히들 ‘문’이라고 하는 바위로 둘러싸인 통로가 보인다.

특별한 명칭이 없어서 일단 ‘수락문’이라 이름 짓고 그곳을 통과하였다.

수락문을 통과하고 나니 어떤 바위 밑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다.

오르기가 꽤나 어려워 보여 오르기를 망설이는 사람들이 많다.

여기가 정상이나 보다고 생각하여 오르기를 포기한 사람들을 제치고 바위를 올라갔다.

표지석을 확인했더니 표지석은 있는데 정상 표시가 없다.

이상하게 생각하고 일단 사진을 한 장 찍었다.

확 트인 앞을 감상하고 뒤를 돌아보니 웬걸 높은 봉우리들이 즐비하지 않는가.

한참 떨어진 맨 뒤에 있는 제일 높은 봉우리에 태극기가 휘날리고 있고...

"아~, 여기가 아닌가베"

내려가서 보니 한 쪽에 ‘하강바위’라 씌어 있다.

쉬면서 아래를 보니 내가 통과했던 수락문의 외관이 보였다. 음경의 모습이 아닌가.

내가 수락문이 아니라 옥문을 통과했다는 얘긴가?

안쪽은 옥문이고 바깥쪽이 음경이면 자웅동체가 되는 셈인데.

이름하여 “자웅동체바위”가 어울리겠다.

등산로가 갈수록 가관이다.

바위사이의 좁은 협곡을 지나고 밧줄에 의지해서 바위를 타고 내려간다.

좀 더 쉬운 코스를 찾느라 이쪽저쪽 찾아봐도 다른 길이 없다.

여자 일행이 많은 팀들은 포기하고 되돌아간다.

어렵게 정상에 이르니 더위와 갈증으로 자연스럽게 하드를 사먹게 된다.

수락산에는 이름 있는 바위들이 많다.

처음에는 그들 모두 사진에 담기 위해서 지도에 기록했지만

등산하면서 그 바위들을 찾아 볼 생각조차 없어졌다.

누군가 ‘철모바위다’고 말을 하자 그때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수락산의 태극기는 자연스럽게 다가왔다.

이미 불암산 에서의 경험에다가 하강바위에서 이미 확인한 상태이기 때문이리라.

1시경에 도정봉을 향하여 하산을 시작했다.

한적하고 전망 좋은 바위를 골라 나머지 김밥 한 줄을 먹었다.

앞으로도 쉽지 않은 절벽 하산길이라 하니 에너지를 미리 보충해야겠다.

홈통바위(기차바위) 우회로가 있었으나 보고 싶은 마음에 곧장 가기로 했다.

도대체 홈통바위는 언제 나오는 거야?

갑자기 깎아지른 암벽과 함께 동아줄 두 줄이 설치되어 있다.

위에서 보니 대략 50미터는 되어 보인다.

먼저 도착한 세 사람이 한명씩 줄 타고 내려간다.

나 역시 줄 타고 내려가면서 옆에 패인 홈에 평행하게 내려갔다.

한참을 내려온 것 같아서 밑을 보니 절반정도밖에 오지 않았다.

갑자기 겁도 나고 마음이 조급해진다.

천천히 천천히 내게 최면을 걸면서 밑에 도착했다.

위를 쳐다보니 이게 바로 홈통바위가 아닌가.

이후로도 줄 타고 내려가는 구간이 3번 정도 지나서야 우회로와 만났다.

체력도 떨어지고, 하체에 무리가 갔지만,

문제는 마지막 김밥을 먹고 나서부터 배가 불편하기 시작해 갈수록 강도가 더해갔다.

2시경에 안부사거리에 도착했다. 원래의 계획대로 도정봉을 지나 동막골로 갈 것인가,

아니면 석림사로 빠져 장암역으로 갈 것인가?

무리하지 말자. 오늘은 이 정도로도 충분하다.

3시경에 장암 역에 도착하여 생리현상부터 해결하니 우선 살 것 같다.

아무래도 하드와 김밥, 얼음물이 원인인 것 같다.

4시반경 집에 도착할 무렵에 신택이 전화가 왔다.

부실한 내가 불암산-수락산 산행을 한다니 걱정되었나 보다.

목석같다고 했던 말 취소.

집에서 막걸리로 정상주를 대신했다.

집사람에게 내가 명명한 자웅동체바위를 설명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