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4월 12일 월요일 저녁이다. 지난 4월 3일 백두대간(3번째)을 다녀온 지도 9일이 지났나??  TV를 보면서 필라테스 튜빙밴드를 이용하여 열심히 팔/어깨 운동을 하는 중이다. 헬스자전거에 밴드를 걸고 열심히 당긴다.....암릉 등반을 대비하여 "밧줄 땡기기"에 긴요한 팔 근육 강화운동이다!!! 참 오지랖도 넓다. 5월 1일 코스인 이화령-하늘재 구간을 위한 사전 준비인데........(이 구간은 백두대간 중 가장 긴 암릉 지대로 미끄러운 바위와 수십개의 밧줄 구간이 있단다. 지난 2~3월 대야산과 희양산의 암벽 밧줄구간에 혼이 난 이후 지레 겁을 먹은 탓이다. 늙어지면서 겁만 늘어나나?~~에휴)

 그런데 산행일 5월 1일을 앞두고 3일전쯤인가 갑자기 일정이 바꼈다. 원래 8월 중에 계획된 20구간(소백산)을 이번으로 앞당긴다는 것이다. 행인가? 불행인가? 열심히 주판알을 튕기는데.......결론은 항상......?

1. 산행일시 및 구간

  죽령-제2연화봉-천문대-제1연화봉-비로봉-국망봉-마당치-고치령-좌석리(28.83Km)
  : 2010년 5월 1일(토), 당일산행, 산행시간(06:51~14:03, 7시간 12분 소요)
 
 
 
2. 물과의 싸움?

 원래 8월에 기획된 소백산 구간을 5월로 긴급 변경한 것은 이화령-하늘재 구간이 산불감시기간의 통제로 편법산행에의 걱정도 있었지만, 보다 실제적인 이유는 한 여름 뙤약볕아래서 기나긴 소백산 구간을 통과하는 게 너무나 힘들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소백산 구간은 구간도 긴데다가, 햇볕을 막아주는 나무가 별로 없고, 특히 물을 보충할 곳이 전무하여 여름산행은 거의 죽음이란다. 선행자들의 산행기를 봐도 주로 봄이나 가을에 많이 하였고, 산행시간도 12시간 이상 소요되는 게 일반적이었다.
 지난 3월 중에 구입하여 지난 4월 백두대간 산행에서 톡톡히 재미를 본 수낭(3리터 카멜 보온물백)에 물을 정성껏 채우고 "가능하면 조금씩 물을 빨아 마시자!" 라는 다짐을 하며 새벽 산행 길에 나선다. 안산 중앙역에서 언제나 처럼 이제 꽤 낯이 익은 동료들과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4시에 출발하였다.
 
 어제 "산의아들"에게 신발은 어떤 걸로 신고 가느냐고 전화 했더니.........경등산화 신어도 괜찮댄다.(사실 최근에 캠프라인 하이랜더 중등산화를 샀는데, 너무 마음에 들어 이번 산행에 꼭 시험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어서였다.) 하기사 5월에 중등산화 신는 것도 그렇기는 하다는 생각이 들어, 등산 입문 시 구입하여 지금은 밑창이 거의 닳은(지금 보면 완전 초보자용) 몽벨 경등산화를 신고 왔다. 슬쩍 확인해 보니 까마득한 고참들도 거의 전부 경등산화에 오로지 물 걱정만 하면서 가벼운 마음으로 백두대간 산행에 임하였는데......
 
3. 뭔가 이상하다!

 산행 들머리인 죽령에 당도하니 새벽 6시 50분. 산행에는 정말 좋은 날씨다. 약간 쌀쌀한 초가을 날씨 같은 신선한 바람에 모두들 오늘 산행에는 최적의 날씨라고 서로 덕담을 주고 받는다. 그런데 오늘도  스틱을 조이다가 또 플라스틱 스토퍼가 부서지고 말았다.(분명 조심했는데..ㅠㅠㅠ) 이번에는 마눌님 스틱을 가져왔는데도 이 모양이다. 옆에서 슈퍼레빗이 "오늘 산행은 스틱이 정말 중요한데...."라며 안타까워 한다. 그러나 그 뿐! 산에서는 스스로 모든 것을 책임 져야 하는 게 불문율이다.
 
<보무도 당당히 지루한 오르막 콘크리트길을 오르는데......스틱 외짝이 유난히 외롭다>

 처음에는 지루한 콘크리트 오르막이 계속된다. 거의 7Km에 이르는 구간으로 제일 힘든 구간이다. 등산 시작 30분이 제일 힘든 건 모두 잘 알 터! 스틱 1개로 지탱하자니 아무래도 속도가 남보다 쳐진다. 4~5개 팀이 앞질러 나가고.....다행히 슈퍼래빗이 앞서서 끌어주고......내가 조금 쳐지면 약간씩 기다려 준다. 조금 걱정이 되나보다. 쉼 없이 오르는데......등성이를 지나칠 때마다 풍경이 변하더니 4~5Km쯤 부터는 영하의 날씨에 강풍도 불고.....바닥에 눈도 쌓여 있고 얼어서 미끄럽기까지 하다......누군가 아이젠 준비했어야 하나? 농담조로 얘기하는데.....
 
<이게 뭔 조화랑가??? 미끄러운 빙판 길!>

 마침내 제2연화봉에 올라서서 앞으로 갈 구간을 일별하니.......이건 완전 겨울 산 그 자체이다. 어떻게 이럴 수가?????
 
<본격적인 능선 구간 초입 풍경!>

4. 5월 눈꽃산행!

 끝없이 피어 있는 설화 가득 찬 풍경 속을 내쳐 걷는다. 겨울철 소백산 칼바람은 유명하다. 방풍쟈켓을 꺼내 입고 부지런히 걸었다. 강풍 때문에 춥기는 한데 온도는 그렇게 낮지 않아서 천만다행이다. 하필 장갑도 손가락이 없는 걸로 껴서 온도가 영하였으면 정말 고생할 뻔했다. 문제는 신발인데......발목이 낮은데다 스패츠가 없어 눈이 신발 안으로 자꾸 밀려 들어온다. 다행히 소백산이 국립공원 구간이라서 국망봉 너머까지는 길이 잘 닦여 있어 망정이지.....휴!
 
<소백산 칼바람 속에 힘든 모습이 역력!>

 소백산 칼바람 속에 제1연화봉, 소백산 정상인 비로봉(1,439m), 국망봉을 거쳐 걷고 또 걸었다. 스틱 한 개로 초반 오르막 7Km를 무리해서 오른 후유증인지.......유난히 많은 계단을 오를 때마다 장딴지에 약간 쥐가 내릴 기미가 느껴지곤 한다. 아직 전반인데 쥐가 내리면 정말 큰일이다. 조심조심 중간에 풀어 주면서 오르막에서는 속도를 부쩍 늦춘다.
 
<그래도 비로봉과 맞짱 뜨는 객기도 부려보고.....> 

 
 
 
 
 이렇게 쥐를 조심 하면서 걷고 또 걷기를 4시간여! 국망봉을 지나 어느 지점인가에서 마침 함께 한 5명이 점심을 먹었다. 눈밭에 선 채로 백두대간 길에서 최고의 영양식인 "약밥", 최고의 과일인 "방울토마토" 누군가 가져온 "매실즙"등을 나누고.......모두들 수많은 산행경력에도 불구하고 오늘 같은 경우는 처음이란다. 환경 변화/온난화/MB정부 걱정까지 함께 나누고......행장을 수습하여 부지런히 길을 나선다.
 
<외짝 스틱과 장갑을 뚫고 나온 손가락이 애처롭다!>

 국망봉 이후부터는 잘 닦여진 등산로는 끝나고 백두대간 본연의 어슴한 샛길이 시작되었다. 급 피치로 산행 속도를 내어 한참을 가다 보니......점심 중에 있는 앞선 일행 3팀도 차례로 추월하고 슈퍼래빗 과 나 2명이 짝을 이뤄 신발/양말(벌써 젖은 지 오래) 불평을 하며  빨리 도착할 욕심으로 걷고 또 걸었다. 등산의 희열이 전신에 속속들이 스며드는 순간이다. 모든 운동에 수반하는 고통/희열이 교차하는 중독 현상!!!!
 
5. 철녀와 도사!    

 연화봉 갈림길 언저리쯤이었을까? 한참을 앞서가던 유대장과 천** 산우를 조우하였다. 유대장은 만인이 인정하는 베테랑! 스틱 없이 대간 길에서 잡히는 아무 나무 지팡이를 부여잡고 대간의 거의 최선두에 서시는 분이다. 그 와중에 호미나 괭이 비스무리한 것을 가지고 다니며 약초나 귀한 산나물을 캐시는 일명 "도사님"이시다. 오늘 산행은 눈 때문에 수확이 형편없단다.
 
<눈밭 속에서 한껏 호기도 부려보고.....역시 여성이 있어야~~~>

 천** 산우는 나와 거의 동시에 본 클럽에서 백두대간을 뛰시는데.......여자의 몸으로 혜성과 같이 강호에 등장한 철녀!........처음부터 거의 최선두에 서서 완주하는 능력을 선보인 신성(新星)이다. 전설에 따르면 매주 2회 지속적으로 상당한 코스를 완주하는 이력의 소유자란다. 잘 생겼다! 그리고 잘 빠졌다! 성격도 넘 좋단다! 걸쭉한 농담도 잘 받아 준다! 산행능력은 최고수준! 주위 여성분들의 시샘을 살만하다.(여러 얘기거리가 떠 도는 것은 너무나 당연)

 두 스타께서 슈퍼래빗과 나를 성큼 일행에 끼워 준다. 감지덕지! 나로서는 감격에 겨운 일이다. 부지런히 뒤를 쫓아간다. 오르막에서는 내가 속도가 제일 늦다. 스틱이 하나인데다 약간의 쥐 경련 걱정 때문에 속도를 늦춘 탓이다. 원래 이 클럽에서는 기다려 주는 법이 절대 없는데 은근 슬쩍 속도를 맞춰 준다. 고마울 따름이다. 맨 뒤에서 쵸콜렛과 영양바를 몰래(?) 꺼내 먹으면서 악착같이 따라 붙었다.
 
<눈밭 속에서도 봄을 알리는 꽃이 고개를 내밀고....>

 마당치를 지나 가던 중 잠시 간식 시간을 갖자고 한다. 얼마 남지 않았는데? 웬 휴식? 철녀가 건네어 주는 꼭지까지 잘 다듬어진 이쁜(?) 방울토마토를 먹다가........맞다. 생리적 욕구를 해결하기 위함이라! 도사님이 망을 보고......볼 일을 마치고 다시 길을 나선다.
사실 여성으로서 산을 타는 게 불편한 점이 한둘이 아닐 터! 특히 겨울 산은 수풀과 나뭇잎이 없어 정말 난처하다.(지난 4월에 부부동반 산행으로 과천 매봉을 갔었는데.......사람은 많고......숨을 곳은 없고......동반한 어부인들이 정말 고생을 많이 했다)

 그런데.......간식 이후의 나의 산행은 약간 달콤하게 멍한, 마취 상태인 채로 계속되었다. 괜히 이상한(?) 상상이나 하고.......아큐정전(루쉰作, 아마 열 번 이상 읽은 것 같다.)에서 아큐가 여승을 놀리느라고 볼을 한 번 꼬집었다가......그 부드럽고 묘한 감촉에 잠 못 이루고........나중 엉뚱한 행동을 하다가 된통 혼나는 그 장면에서의 아큐처럼 묘한 흥분에 휩싸인 채로..........
 
<말티노와 도사님과 철녀가 기념으로.......>

 아무튼 무사히 대간 길 마지막인 고치령에 도착하였다. 일행이 사진 한 컷 하고......이제 지루한 콘크리트 포장길 4Km를 더 걸어 내려가 주차장까지 가야한다.
 
6. 한 여름 개울의 망중한!

 펜션 주차장에 도착하니 14시 3분! 어려운 여건에서도 29Km 대간길을 7시간 여에 주파했으니......나름 뿌듯한 자부심 속에 여벌 옷을 챙겨 들고 개울가로 나선다. 거의 초여름처럼 따뜻한 햇살 속에서 알탕(홀라당 계곡에 뛰어들어 목욕을 하고 옷을 갈아 입는 것)을 하고.......따스한 햇볕을 쬐며 이야기 꽃을 피우고........

 정리운동 시간. 양 다리를 벌리는 스트레칭을 하던 중 입담 걸쭉한 고참이 여성분들에게 이렇게 농한다. 일생을 찢어진 상태로 사는데 또 찢느냐고...ㅎㅎㅎㅎ     한 여성 산우가 냉큼 받는다. 남자들은 쓸모없는 양다리 힘만 밤낮 키우냐고......ㅋㅋㅋㅋㅋ

 일행을 어느 정도 기다려 김치찌개에 시원한 소주 몇 잔을 들이키고.......최종 후미는 16시 경에 도착했나 보다.
 
<수량도 풍부하고 따뜻한 초여름 개울가 정경>

 칫솔질을 하려고 개울가로 나갔는데.......웬 여인네가 머리칼을 가다듬고 약한 화장을 손보고 있다. 생얼의 신선함이 묻어난다. 은근히 5월 단오! 창포에 머리 물들이는(맞나?) 조선조 여인네가 연상된다. 입을 헹구고 막 돌아서려는데......"저기 말티노님이죠? 전화번호 좀 줄 수 있어요?"     "네? 아 네~ 조금 있다 나중에......."

 순간적으로 오만가지 상상이 머릿속을 맴돈다. 명함을 줘야 하나? 아니! 모른 척 하자! 온갖 시나리오( 막장 드라마, 사랑과 전쟁, 또 다른 인생의 기회, 일탈에의 유혹 등등등)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나른한 피곤 속에 귀가하는 버스 속에서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7. 집으로!

안산 중앙역 주차장에 도착하였다. 저녁 8시가 조금 지났나 보다. 모두들 수고하셨어요! 서로 인사를 나누며 뿔뿔이 헤어진다. 나도 바삐 짐을 챙겨 내 차가 주차된 곳으로 향하는데........"저기요! 명함 주셔야죠!"  "네? 아 네~" 머뭇거리며 말을 더듬거리는데.......
 
 "말티노님! 토요일 수리산 홀로 산행 하신다면서요? 2~3명 타이트하게 하는 팀이 있는데 합류하세요!" "옙! 여기있습니다!" 한여름 밤의 꿈은 이렇게 끝이 나고........부리나케 집으로 향한다.(참! 수컷들의 속물 근성이란.......)
 
 맑은 정신으로 힘차게 현관 문을 열어 제낀다. 필요 이상으로 큰 소리로 "여보! 신여사! 남편 무사히 돌아왔어!" 단지 내 슈퍼에서 사 온 서울막걸리 한 병에 오늘도 마눌님이 내온 따뜻한 풀무원 두부(마눌은 1+1만 산다.) 한 모를 벗 삼아 부부간의 대화를 잇는다. 물론.......산 이야기는 최소로 하고 자식 얘기로 화제를 돌리는 잔꾀는 잊지 않는다......................zzzzzzzzzzzzzzzzzz.
 
 
 꿈결에 언뜻 언뜻 들려 오는 마눌님의 피아노 선율 속에........성가대의 성가도 이어지고.........경쾌한 곡에 맞추어 나타샤 왈츠
도 추고........가야금 탄주에 맞추어 더덩실 춤도 추고..........상대는 마눌님에서 철녀로, 또 개울녀로 시작도 끝도 없더라!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