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머리인 백봉령에서 산행 준비 중 - 우측 배낭 뒷모습이 나>
 
 백두대간 각 구간의 들머리는 항상 **령(**고개)으로부터 시작된다. 당연히 초반 1~2시간 정도 가파른 깔끄막을 치고 올라야 산 정상에 오르는데.......다행히 오늘 백봉령에서의 오르막은 별로 가파르지 않다. 약간 완만하게 오르내림을 반복하는 코스이다. 한참을 가니 카르스트 지대라는 푯말이 서 있다. 고등학교때 배운 석회암 침식지대(맞나???)인가 보다. 그렇다고 석회암 동굴이나 아님 피요르드 해안처럼 특별히 눈에 띄는 풍경은 볼 수가 없다.

 
                                  <산행 중 백두대간 표지판에 기대어 한 컷>
 
 그냥저냥 묵묵히 걷고 있는데.....여태까지의 널널 산행을 복수라도 하듯 갑자기 상당히 길고 경사가 급한 깔끄막이 나타난다. 눈길이라 아이젠을 찬 상태에서도 자꾸만 미끌려서 오르기가 몇 배로 힘들다. 불수사도북을 16시간만에 주파하시고....목하 강남 8산 종주를 기획하시는, 정말 산을 좋아하시는 홍삼한방님이 어렵게 올라오신다. 발목이 불편하시단다. 더욱이 최근 두 달여 동안 거의 산행을 하지 못하셨는데도 이번 대간 길에 나섰다니 산을 향한 집념에 절로 경의가 표해진다. 송총무님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일행들과 조우를 반복하며 쉬임 없이 걷고 또 걷는다.
 
3. 눈물젖은 컵라면....그리고.ㅠㅠㅠ
 바람도 차갑고 발도 천근 만근 무겁다. 아이젠의 무게가 시간이 갈수록 조금씩 더 무겁게 느껴진다. 몸이 상당히 피로하다는 증거이다. 적당히 쉬면서 음식을 보충할 장소를 찾아야 하는데.....능선 길이라 왼쪽에서 지속적인 칼바람이 몰아친다. 어찌 어찌하여 한 고개를 넘어가니.....약간 평탄한 곳인데 바람도 없고 포근하다. 눈도 마침 없어서(왜 없는지를 생각 못하다니....바보!!!) 송총무님과 함께 배낭을 내려놓고 얼른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붓고.......슈퍼래빗과 철녀님을 기다리는데.....ㅠㅠㅠ

 
                                        <오늘 진행한 백두대간 전경>
 
 갑자기 칼바람이 몰아친다. 거의 태풍 수준이다. 중간정도의 이너장갑을 꼈는데도 몇 초만에 손이 얼어온다. 컵라면의 물이 식지 않도록 배낭으로 막고.....컵라면이 익기만을 기다리는데......정말 쉬임 없이 칼바람이 몰려온다. 컵라면의 물이 식는 게 눈에 보일 정도이다. 송총무님이 꺼낸 김치는 아예 펼 생각도 못하고.....곳감 하나만 어찌 입에 넣었다.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 살짝 불은 컵라면을 그냥 먹기로 했다. 면발은 딱딱한데 그래도 따스한 국물이 있어 다행이다. 마침 슈퍼래빗과 철녀님이 도착하였는데.......제가 그냥 어서 가라고 손짓을 하니.....슈퍼래빗이 왜 이딴 곳에서 점심을 먹느냐고 나무라며 그냥 지나친다. 글씨~~ 누가 알았남???ㅠㅠㅠㅠ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치우고......얼어붙은 손을 호호 불며 장갑을 찾는데.......장갑이 한 짝 밖에 없다. 엄청 큰 방한장갑이라 숨을 곳도 없는데......한참을 찾다가 능선 반대쪽을 내려다 보니 한참 아래 나뭇가지에 장갑 한 짝이 걸려 있다. 세찬 바람에 장갑이 저기까지 날아갔나 보다. 자칫 했으면 장갑 한 짝으로 지옥의 겨울산행을 할 뻔 했다. 투덜거리는 송총무님을 앞세우고 부리나케 걷는데......한 10여분 후에야 손끝에 약간의 온기가 돌아왔다.
 
4. 동심으로 돌아가다!
 아무리 추워도 배는 채운 덕분에 속도를 내어 열심히 걷고 또 걸었다. 얼마를 가니 상당한 깔끄막 중턱쯤에 슈퍼래빗과 철녀님이 간식을 드시고 계신다. 반갑게 조우하여 사진도 한 컷 하고......아까 그렇게 추운 칼바람 능선 길에서 식사를 하는 나의 무지에 대해 슈퍼래빗이 고소해 하며 놀린다. 능선길 바람 때문에 눈이 날아간 곳을 식사 장소로 택하였다는 무지를 톡톡히 경험한 것이라나??

                                    <스타일 죽이는 슈퍼래빗의 포즈>

 4명이 일행이 되어 눈길을 마냥 걸었다. 그런데 이런! 슈퍼래빗이 아이젠을 한쪽에만 신고 있다! 이번에 새로 산 것인데 본인도 모르게 벗겨져 버렸단다. 어떻게 십 수년 베테랑 산 꾼이 그럴 수 있느냐고 약을 올리면서도 슬몃 걱정도 되는데.......아이젠 한쪽으로 미끄러지지 않고 잘도 걷는다.

 
                                      <석병산을 향하여 계속 고고씽~~~>
 
 대간 길의 눈 상태는 시시각각으로 변한다. 양지바른 쪽은 대부분 얼어 있고(녹고 얼기를 반복해서) 높게 쌓인 곳은 무릎까지 빠지는 심설이다. 또 어떤 곳은 파우더 눈(부드러운 쌀가루 같은)으로 아이젠도 마구 미끌린다. 눈에 쌓인 오르막을 오르기는 체력이 2~3배 소모된다.
 갑자기 슈퍼래빗과 송총무님이 장난기가 발동하였나 보다. 서로 뛰어다니다가.....스틱으로 패기도 하고....넘어뜨리기까지 한다. 뒤로 벌러덩 눕기도 하고...... 송총무님과 철녀님의 환한 웃음 소리가 그렇게 맑을 수가 없다. 나도 덩달아 커다란 고함도 맘껏 외쳐 보고........이렇게 설산의 대간 산행길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석병산에서 선두진의 위엄!>
 
5. 석병산을 넘어....끝없는 하산길!
 석병산을 넘어 두리봉 팻말이 보인다. 오르내리막을 반복하며 하산길이 끝없이 이어진다. 상당수 산꾼들은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하산 시 뛰시는 분들이 많다. 나는 무릎보호를 위해 꼭 스틱을 먼저 짚고 나중에 발을 딛는다.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이다.

 사실 나는 몸(건강)에 대해서는 상당히 겁이 많다.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유산 없이 일찍부터 홀로 생존해야 한 우리세대 모두에게 잠재적인 본능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 같다. 만약 지금 이 시점에 건강을 잃는다면.......대부분 삶의 근거가 뿌리째 위협받을 수 밖에 없을 터! 그래서인지 유독 건강에 집착한다.

 내가 이렇게 등산에 입문하게 된 계기도 타고난 건강을 믿고 테니스, 스키, 배드민턴, 골프 등에 몰입하다가....40대 중,후반에 접어들면서 몸에 무리가 됨을 감지 하면서 부터이다. 지금은 등산외의 다른 운동은 공원 산책이나 동네 배드민턴 그리고 집에서 하는 헬스 자전거나 필라테스 등이 전부이다.

 등산 덕분인지, 건강에 대해 조심하고 겸허하게 산 덕분인지(단 술은 제외)....1월 초에 종합검진을 받으면서 무릎촬영을 같이 하
였는데......아주 상태가 양호하단다. 정말 좋아하는 산행을 가능한 오래 즐길 수 있도록 무릎보호에는 모두들 각별히 신경 써야 할 것 같다. 내가 애용하는 무릎보호 3종 세트는 스틱, 무릎보호대, 깔창이다.

 
                         <파우더 눈이 하이얀~~마치 떡가루처럼 부드럽다>
 
 삽답령 까지 하산 길은 5명이서 일행이 되어 걷고 또 걸었다. 약간 기분 좋은 몽롱한 상태에서 머릿속까지 맑아지는 청량한 겨울 하늘과, 차운 바람, 하얀 심설 사이로, 틈틈이 보이는 푸른 산죽 사이를 질주하는 5인의 발자욱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린다. 언뜻 언뜻 비추며 지나가는 나무 그늘 사이로 앞서가는 일행들의 알록달록한 모습이 피안의 다른 세계 속에 있는 듯한 착각마저 불러 일으킨다.

  
                                                   <두리봉에서 한 컷>
 
 마지막 가파른 내리막 계단을 딛고 내려서니....드디어 오늘의 날머리인 삽답령이다. 대간 표시석에서 슈퍼래빗과 사진을 주고 받으며 서로 상대를 치하하며 신년 덕담을 주고 받았다.  
 

<날머리 삽답령에서의 나>
 

<날머리 삽답령에서의 슈퍼래빗>
 

                             <날머리 삽답령에서의 후미 7인의 전사>
 
 
6. 오두막에서의 하산주, 그리고 새해 떡국!
 회장님은 얼마 전에 발목 수술을 받으셨다. 아직 불편한 몸으로 회장이라는 직책 때문에 무리해서 오늘 산행에 동참하시고, 또 제반 준비를 하셨단다. 산을 타는 대신 버스에서 미리 회원들이 먹을 신년 떡국(닭다리 포함)을 준비하셨다. 강총무님은 지난 산행에서 준비하여 대히트를 친 돼지껍데기를 또 준비하여 오셨다. 손이 엄청 많이 가는데도 기꺼이 준비해 오셨다니.......산만 잘 타는 게 아니라 음식 솜씨와 마음씨도 초 일류급이시다. 모두들 고마울 따름이다. 이런 집행부의 따뜻한 마음과 수고 덕분에 안산등산클럽이 계속 유지되고 발전되면서 회원들이 행복감을 나눌 수 있는 것이다.

 삽답령에 있는, 난로가 훈훈한 자그마한 오두막 가게에서 오붓하게 자리가 마련되었다. 정성스레 끓인 신묘년 떡국과 돼지껍데기
를 안주 삼아 겨울산행의 뒷담화로 떠들썩하다. 모두들 오랜만에 맛보는 대간산행과 회원들의 만남이 정말 그리웠나 보다. 나는 오늘 저녁의 성당 회합 때문에 할머니가 담근 막걸리(도수가 상당히 높은) 4~5잔만 마셨다. 슈퍼래빗의 잃어버린 아이젠 한 짝은 뒤따르던 홍삼한방님이 챙겨서 가져오셨다. 역시 고참 산꾼은 뭐가 달라도 달랐다. 
 1시간 정도 후미를 기다려 버스에 올라타고.......귀가 길에 올라 기분 좋은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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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집에서...성당으로....그리고 다시.....

 안산 중앙역에 도착하니......저녁 8시 언저리 쯤. 슈퍼래빗과 조만간 소주 한잔의 기회를 만들기로 약속하고......강총무, 송총무님을 모시고 부리나케 집으로 향한다. 우리 등산클럽의 맛난 하산식을 위해 고생하신 두 분 총무님과 식사도구를 챙겨 각자 아파트 입구까지 최대한 정중하게 모셔 드렸다. 다음에도 풍성한 음식을 준비해 주십사 하는 얕은 꾀를 숨기고....ㅎㅎㅎ

 집에 도착하니 마눌님이 영 심기가 불편하시다. 혹시 나땜에???? 다행히 큰아들놈과 아주 하챦은 일로 다투었나보다. 얼른 마눌님 편을 들어 아들놈을 나무라고.....장비를 챙기고 씻고 나서 잽싸게 성당으로 향하였다. 오늘은 1월 전례부 회합이 있는 날이다. 지난 송년 모임에 회사모임 때문에 참석 못한 죄를 갚아야 하기 때문이다. 맑고 차가운 설산의 기운을 받아 온 때문인지.......기도문 귀절 귀절이 절실하게 와 닿는다.
 
 ----- 저희는 하느님이 주신 거룩한 품위를 지키지 못하고 온갖 욕심과 오만으로 가득차
 ----- 생각과 말과 행위로 죄를 많이 지었으며 자주 의무를 소홀히 했나이다
 ----- 제 탓이오 제 탓이오 저의 큰 탓이옵니다
 
 하느님의 복된 말씀에 한껏 고양된 우리 전례부 회원들은.....회합이 끝나고 나서.....또 하느님이 주신 거룩한 품위를 지키지 못하고....근처 왕 곱창 집에서 12시까지 소주를 즐기며......인간사 세속의 재미에 푸욱 빠져 들었다....ㅠㅠㅠㅠ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