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당동 아침

아침 7시에 출발한다고 하니 전날 일찍 자고 새벽에 일어나 부산을 떨다가 10분전에 집결지에 도착했다. 친구들이 몇 명 없어서 조금 썰렁했지만, 버스에 타고 있겠지 생각했는데 버스에 올라도 몇 명 없다. 승관이 옆에 앉아서 얘기 들어보니 코리안 타임 30분이란다.

보강이 등산복 차림으로 나타났다. 이틀 전에 통화 상으로 오늘 저녁 근무라 참석이 어렵다고 했는데 뜻밖이라서 반가웠다. 요즘 시간만 나면 목포에 내려가 농사짓느라고 교체근무를 자주 하는 바람에 이번에는 어쩔 수가 없단다. 출발 전 사진과 친구들 전송하기 위해서 왔다고 한다. 등산복 차림이라 마음의 갈피를 못 잡고 있는 것 같아서 상현이가 뒤풀이만 하지 않으면 시간과 교통상 저녁에 근무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다고 함께 산행할 것을 끈질기게 종용했으나 어쩔 수가 없었다. 보강의 우정만 함께 할 수밖에.

버스에서 밖을 보니 대익이가 도착했다. 웬일이야? 함께 간다는 언급이 전혀 없었는데, 이따 버스에 오르면 볼 수 있겠지. 웬걸 버스가 출발하는데도 오르지 않는다. 많은 양의 막걸리를 시원하게 하기 위해서 대익이 냉동 창고를 이용했으며 그 막걸리를 전달해주러 왔다고 한다. 그래도 그렇지 버스 한번도 오르지 않고 가다니, 초교 모임이라면 상상할 수 없는 태도다. 아쉽지만 대익이 정성만이라도 함께 하는 것으로 만족해야지.

출발 때가 되어서야 밖에서 서성이던 친구들이 탑승을 한다. 처음 보는 얼굴들도 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길수, 종옥이, 영재다. 현수, 덕용이는 자주 보지는 않아서 이름이 헷갈렸지만 그래도 구면이었다. 버스가 출발하면서 만 차가 될 줄로만 알았던 좌석이 많이 비었다. 함께하기로 했던 친구들이 여러 사정으로 불참하게 된 것이다. 도착 때부터 민영이 표정이 조금 어두운 것 같더니 원인이 바로 이것이었나 보다. 사람들을 모은다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다. 약속을 지키는 것이 집행부에 가장 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되새기면서, 즐거운 우정 산행 용봉산으로 GO!

용봉산 주차장까지

출발하면서 민영이와 신택이의 오늘 전체스케쥴과 산행스케쥴에 대한 안내가 있었다. 평소에도 목소리가 큰데 마이크까지 잡으니 시끄러울 수밖에, 아침 식사비로 5천원 주고 회비로 3만원 받는다(되로 주고 말로 받아감)는 것과 오동이의 통 큰 기부 얘기 말고는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참고로 민영이 말에 의하면, 오늘 참가 인원이 서울지역 29명, 목포는 28인승을 가득 채우기 위해서 누워서 온다고 하니 14명 정도, 광주는 4명, 성관이 부부 2명, 도합 50명 전후로 생각된다.

승관이와의 대화는 항상 즐겁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몸에 배어 있다. 가는 동안 내내 승관이에게 돌팔이 짓을 많이 했는데, 승관이 허리가 아파서. 우리 나이가 50이 지났으니 물건으로 치자면 여기 저기 고장이 잘 나는 중고품이다. 특히 남자구실 잘 하려면 허리가 좋아야 하는데, 허리는 대체재가 없으니 우선 고장 나지 않도록 해야 하며, 고장 나면 더 망가지지 않도록 초기에 관리를 잘 해야 한다. 관리 방법 중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하중을 받지 않게 하고, 두 번째가 운동이며, 마지막이 자세 및 보온이다. (자세한 것은 돌팔이가 아닌 전문의에게). 이미 많이 망가진 사람은 방법이 없고 여성 상위로 가는 수밖에. 그것도 가뭄에 콩 나듯이. (더 자세한 것은 28 에로티스트 경호에게).

휴게소 식당에서 아침을 먹는데, 메뉴를 보니 5천원 가지고는 먹을 것이 별로 없다. 만만한 북어 해장국도 6천원, 지갑을 두고 와서 1장 더 달랬더니 안된단다. 병호의 도움으로 해결했지만, 신택아, 아침 식사 제공하는 곳은 우리뿐이라고 큰소리치기에는 조금 옹색해 보이지 않냐? 그래도 집행부 덕분에 친구들과 유쾌 상쾌 통쾌한 식사로 아침을 시작하게 되어 오늘의 예감이 너무 좋다는 느낌이 들었다. THANK YOU!

용봉산에서

목적지에 거의 다가서 신택이 알바를 겪게 되었다. 짧아서 다행이었지만. 점심 장소를 확보하기 위해서 신택이, 영철이, 덕용이 셋이서 먼저 출발하고 나머지는 목포와 광주 친구들을 맞이했다. 목포 친구들은 한성이, 경호, 정백이, 낙채, 성수를 알겠고, 광주는 용출이, 동환이를 알겠다. 때가 되면 다른 친구들도 알게 되겠지.

산행 전 우정의 단체사진을 찍는데, 민영이가 갑자기 보복성 멘트를 날린다. 사진사가 모두 불참했으니 그동안 사진에 꼬투리 잡았던 나에게 사진을 찍으란다. 따라가기도 바쁜데 웬 사진? 이번엔 어떤 하자도 걸지 않는 것으로 찍사 역할을 모면했다. 절경을 담기 위해 개인적으로 사진기를 가져갔지만 찍을 수가 없었다. 친구들 후환이 두려워서. 그러게 평소에 잘할걸.

단체 산행에서는 가급적 선두에 서는 것이 좋다. 힘이 빠지더라도 중간으로, 후미로, 최소한 낙오하지는 않는다. 초입에서 본 용봉산의 전체 조망이 얼핏 유달산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숲이 좀 더 우거졌다는 차이는 있지만. 산행 시작 후 30분에서 1시간 사이에 임계점에 도달할 때까지 쉬지 않고 가는 것이 유리하다고 한다. 선두에 선 신택이와 규상이 어부인께서 처음 쉬는 지점부터 능선까지 오르자 나의 임계점에 도달했다. 흐르는 땀을 닦으라고 재선이가 노란 손수건을 선물했다. 내 모자, 내 복장에 대해서 초장부터 트집 잡던 친구들의 비난을 일시에 잠재우는 목수건이 되었다. 항상 재선이의 패션은 군계일학이다. 일주일 전에 연습산행 했던 보람이 있었다.

정상에 오르는 길은 사람들로 복잡하다. 정상 인증 샷 찍기 위해서 선점을 했더니 모여드는 친구들에 의해 벼랑 끝으로 밀렸다. 뒤로 더 밀리면 추락할 것 같다. 혼잡한 인파로 정상에서 전체를 조망할 생각이 아예 엄두도 나지 않는다. 서울에서 그리 멀지 않으니 시간나면 집사람과 함께 차분하게 다시 올 수 있을 것 같다.

점심식사 시간이다. 정상 바로 아래에 50명이 넘는 인원이 함께 할 수 있는 장소다. 선발대의 가치가 있는 훌륭한 곳이다. 병어회와 막걸리가 주 메뉴이다. 나는 5대 영양소를 고루 갖춘 도시락을 꺼냈다. 산행시 늘상 준비하는 메뉴이다. 병호란 놈이 애들 도시락이라고 놀려댄다. 본인은 숟가락 하나 달랑 가져왔으면서. 신택이 복분자주의 병권을 선점하고서 잔을 돌리기 시작했다. 경호 또한 다른 병권을 쥐고서 반대쪽에서 잔을 돌리고 있다. 신여사님 왈, 복분자주는 본인과 관계없이 신택이가 주조한다고 한다. 자식 어부인에게 얼마나 잘 보일려고. 백두대간 파이팅의 근원이 따로 있었네. 출처를 모르는 적포도주가 있어서 다시 병권을 쥐고서 어부인들에게 아부하기 시작했다. 아부가 지나쳐 오동이 제수씨에게도 권하는 불상사가 발생했다. 나중에 이해를 구했지만. 복분자주, 포도주, 막걸리, 병어회, 도시락 모두 산에서 친구들과 함께한 우정의 음식이니 어느 것 하나 맛과 향기가 넘치지 않겠는가.

이제 용봉산 산행의 절정이다. 능선을 따라 하산하면서 암릉과 기암괴석을 감상하는 것이다. 이미 공룡능선을 찬찬히 감상하면서 산행한 터라 감탄사는 없었지만 나름대로 아담하고 아기자기한 암릉과 기암괴석들이 있어 보는 즐거움은 넉넉했다. 아쉬운 것은 사람들에 떠밀려 기암괴석과 암릉을 충분히 감상하지도 못하고 사진기에 담고 싶은 장면들을 그냥 지나쳐 올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기약하면서 아쉬움을 달랬다.

마지막 하산길에서 성관이가 용봉사에 들러 가자고 한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얘기도 있지만, 성관이의 홈그라운드를 믿고 따라 나섰다. 용봉사는 예산 수덕사의 말사로 백제시대에 세워진 것이라고 한다. 수덕사 대웅전이 가장 오래된 3대 목조건물중의 하나이며 연대가 확실한 유일한 것이라서 관심이 갈 수밖에 없었다. 대웅전이 맞배지붕에 주심포양식이 같아서 전면은 비슷한데, 측면의 벽체(수덕사는 기둥과 들보의 노출로 인한 건축미가 아름답다)는 전혀 아니다. 마애불은 신라시대 소성왕 1년에 제작했다는 연대가 있어서 미술사적 의의가 있을 것 같지만 마모가 너무 심하고, 부도는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측하고 있는데, 마모 및 파손이 너무 심해서 문화재로서 가치는 별로로 보인다.

꿈의 별장에서

전원주택이 바로 이런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외딴집 하나에 관목으로 둘러싸인 넓은 잔디마당. 단지로 조성되는 흔한 전원주택과는 격이 달랐다. 원님 행차에 나팔 분다고 목포 광주 팀들이 여기까지 왔으니 서산 마애불을 답사한다고 늦어진단다. 낙지와 병어도 함께 갔으니 우선 막걸리와 푸성귀만으로 사교의 장을 열었다. 얼마 후 성관이가 야외 화로에서 직접 구은 조개구이가 올라와 안주의 체면을 차릴 수 있었다.

산에서의 병어는 된장이 빠져서 우정으로 먹었지만, 된장과 양념을 모두 갖춘 별장에서의 병어는 맛 자체를 즐길 수 있었다. 철주의 칼 다듬이 소리는 낙지를 먹지 않고도 맛을 느낄 정도로 그날 요리의 압권이었다. 살생을 금하는 불가의 몸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았을 때 우정의 넓이와 깊이를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산행에서 힘들어하던 용출이가 목포 팀 버스의 알바로 불만이다. 마애불 답사로 길을 헤맨 것 같다. 목포 촌놈들이라 길눈이 어둡다나? 멀찍이 고봉 선경이가 있다. 기대승과 호가 같아서 오늘의 조우가 기대됐다. 불행히도 한자가 다르고 서예를 한단다. 어쨌거나 기대승 얘기가 나와서 조선 성리학에 대해 서로 담화를 하던 중 갑작스럽게 신과 종교를 들고 나오는 엉뚱한 친구가 있어서 아쉽게도 더 이상의 얘기는 진행할 수 없었다. 경호에게 인터넷 서치를 숙제로 남겼다.

별장의 마지막을 장식하면서 서울, 목포, 광주 집행부와 별장 주인장에 대한 감사의 소개가 있었다. 초면인 목포 회장 갑선이가 소개된 이후에야 이름을 알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오늘 행사의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어부인들의 동행이다. 친구들과 부부동반 여행을 했던 과거 경험으로 볼 때 남편은 부인에게 잘 해야 하고, 부인은 성격이 좋아야 가능하다. 나는 잘하지 못했고, 집사람은 너그럽지 못했다. 지금은 내 친구들 행사에 거의 참석하지 않는다. 일곱 분의 어부인들에게 감사를 드릴 수밖에. 그 때서야 한 쌍이 초면인 대성이 부부인 줄 알게 되었다. 목포 광주 친구들이 귀가하기 위해서 버스로 향할 때 초면인 친구가 다가왔다. 본인이 채경이라고 한다. 반가움과 미안함이 함께 했다. 술은 주거니 받거니 했을 텐데. 누군가 옆에서 골프가 이븐파 가까운 싱글이라고 한다. 훗날 광주에서의 조우를 기약했다. 그렇게 그렇게 아쉬운 이별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귀가 길의 유령

버스를 타고 서울로 향하는데, 모두들 피곤한지 눈을 감고 잠을 청한다. 나 역시 자기 위해서 눈을 감았다. 오늘 하루 뿌듯한 생각들이 스쳐 지나가다가 갑자기 남은 시간이 아까운 생각이 들었다. 친구들을 깨워 남아 있는 소주로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았다. 민영이와 신택이는 고생해서, 성호와 상현이는 몸이 좋지 않아서 술을 권하지 않았다. 아침에 사당동에서 서먹했던 친구들과 거리감이 없어진 것 같다. 다음에 만날 때는 기쁘게 인사할 수 있겠지?  특히 덕용이가 응수를 잘해주어 둘이서 주위를 너무 시끄럽게 한 것 같다. 소주 3병까지는 정신이 말짱하다. 이후로 나는 유령이 되었으며 4병째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유령과 술을 마신 친구들아 살아 돌아간 것만으로도 다행으로 생각해라.

모처럼 글을 올려본다. 친구들 중에 대단한 글쟁이들이 많아서 어느 순간 내 글들이 많이 부족해 보였다. 그 후로 본문보다는 댓 글을 주려 올렸는데, 이번에는 부족하더라도 넘치는 느낌을 정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정교하고 자세한 그리고 전체적인 산행기는 기자(승욱이)에게 맡기고 나를 중심으로한 간단한 스케치를 올려본다.

마지막으로 이번 연합산행을 위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친구들에 대한 뜨거운 열정과 넘치는 우정으로 시종일관 이끌어준 민영이와 신택이에게 깊은 감사를 표한다.

목고28산우회여, 100회를 넘어서 영원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