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오후 늦게 문자메시지가 왔다. ‘연이 친구의 본인상’

무심코 연이 친구의 부모님 상으로 생각하다가 ‘본인’이라는 단어에 화들짝 놀라 다시 확인했다. 틀림없는 연이 친구의 본인상이다.

신흥이에게 곧바로 연락했으나 불통이다. 당연할 것으로 생각하여 초교동창 대익이에게 전화했다. 마찬가지로 불통이다. 고교 홈피를 방문하니 부고소식이 올라와 있다. 현실감이 들면서 얼마전까지만해도 멀쩡했던 친구인데 믿기지 않았다.

연이와는 같은 초교 및 고교 동창이지만 얼굴만 알고 있을 뿐 잘 알지 못하고 지내다가 작년부터 초교 동창회와 고교 동창회 모임을 통해 얘기를 나누면서 알게 되었다. 초교시절부터 지금까지 선한 얼굴에 밝은 미소로 특징지워지는 성실한 친구로 인상이 남아있다.

신흥이와 뒤늦게 통화하면서 부고 원인에 대해서 막연하게 알게 되었다. 연이가 지금까지 고교 홈피에 올려온 글 내용들로 볼 때 연이의 행동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연이가 극단적인 행동을 할 수밖에 없었던 원인은 모르지만 연이의 많은 글들에 댓글 하나 달지 않았던 나도 일부분 책임이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그동안 고교 홈피에 올랐던 연이의 글들을 찾아보았다. 저작권 문제로 마지막 글만 남기고 모두 삭제되었다. 역시나 삶과 인생에 대한 모범 글이다. 너무도 당연하여 의식하지도 않았던 내용들인데 새삼스럽게 머릿속에 각인된다.

5일 저녁 7시경에 연이의 주검을 찾았다.

연이 동생과 함께 상주로 있는 연이의 아들과 딸을 보면서 독한 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을 두고서 어떻게 그런 행동을 할 수 있는지...

문상객실로 들어서자 초교 동창 승철이가 와 있다. 승철이의 소개로 고교 동창 훈이를 처음으로 만났고 훈이를 통해서 자세한 내용을 알게 되었다. 회사 일로 검찰 조사를 받았고 심적인 부담을 이기지 못해 극한 행동을 했다는 것이다. 성호의 얘기로는 문제가 될 사건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마음이 착하고 여린 줄은 알았는데, 이 정도로 형편없을 줄은 몰랐다. 검찰 조사관과 연이와의 사이에 어떤 사건과 얘기들이 오갔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렇다고 이런 극한 결과를 초래한데 대해서 어제의 연민과 자책의 감정은 없어지고 연이의 글과 가족을 생각할 때 일종의 배신감마저 들었다.
연이와 가족모임을 갖고 있는 태준이는 어제부터 식장 일을 도맡아서 해오고 있었다. 고교 동창 신택이와 환철이가 연이 1년 선배와 함께 왔다.

얼마후 종석이가 와서 어떻게 된 거냐고 묻는다. 환이가 다시 자세하게 설명하자, 자신의 경험상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고 한다. 회계법인에 근무할 당시 어떤 사건으로 여러명이 검찰 조서를 받았다고 한다. 본인은 좋은 검사를 만나서 사건이 쉽게 풀렸지만 그렇지 않은 검사를 만났다면 무척 힘들었을 것이라고 했다. 그 사건 이후로 직장 일에 회의가 들어 모두 때려치우고 공부하러 중국에 갔다고 한다. 검찰 조사를 받는 도중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들이 드물지 않다는 것이 그 증명일수도 있다.

개인적으로 호형호제하면서 지냈던 춘천지검 검사들이 생각 났다. 강단지고 원칙주의자였지만 한시와 운치를 좋아했던 임채진 지검장, 온화하면서 끊임없이 공부하는 친형님같았던 차장검사, 막역한 친구같았던 부장검사, 미숙하고 부족해 보이지만 매력적인 여동생같은 평검사 등. 사석에서 만나지 않고 사건으로 이들을 만났다면 어떠했을까. 법이 이들을 억압적이게 강요할뿐이지 내면에는 우리와 같은 인간성을 가진 보통 사람이라고 생각된다. 살아있는 권력에 의해 자신의 임명권자를 수사할 수 밖에 없었던 임채진 전 검찰총장의 인간적인 고뇌를 느낀 것은 나만의 생각이었을까?

조금 후에 대익이와 초교동창이 오고, 뒤이어 민영이, 인상이, 승돈이가 왔다. 연이 선배가 약간 과음한 상태로 우리들에게 당부한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살아야 하고 두번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된다.' 성관이, 용이가 왔고 뒤이어 기호, 영호, 승관이, 용식이가 왔으며,  오동이가 왔다.
오동이가 들어오면서 큰 소리로 연이가 다녔던 회사를 성토한다. 회사 일을 하다가 이렇게 되었는데 회사측에서 너무 무성의하다는 것이다. 발인이 6일이어야하는데 회사와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서 7일로 순연되었다. 이 문제로 어제부터 오동이, 태준이, 성호가 가족과 함께 회사와 대화중인 것 같다. 떠난 사람은 그만이지만 남아 있는 가족을 위해 발벗고 나서주는 친구들이 존경스럽다. 회사는 나름대로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망자와 유족의 아픔보다 더 하겠는가. 원만히 해결되어 연이의 귀천이 순탄하게 이루어지기를 바랄뿐이다.

주혁이가 대전에서 올라왔다. 멀리 입구에 들어서는 모습이 마치 연이 같아서 깜짝 놀랬다. 대덕단지에 있는 반창 동철이 얘기가 나왔다. 아직도 총각이라고 한다. 반창 일로 몇번 전화했지만 통화가 되지 않았다. 주혁이 핸펀에 있는 번호를 보니 번호가 바뀌지는 않았다. 망할 놈아 전화좀 받아라.

호현이가 오고 마지막으로 건이가 왔다. 건이는 위암으로 수술받은 몸 치고는 아주 건장하다. 소주를 마시려고 한다. 황급히 못마시게 했지만 오늘은 마셔야겠다고 한다. 더이상 못마시게 할 수는 없었다. 수술후 1개월간은 병원에서 시킨대로 음식을 조절했지만 지금은 예전대로 돌아갔다고 한다. 건이의 식생활 때문에 발생한 병이기 때문에 식생활을 고치지 않으면 안된다고 했다. 수긍은 하지만 따를지는 미지수다.

인상이, 기호, 종석이, 용식이가 먼저 자리를 떴다. 승돈이는 최근의 동창회 상황을 얘기해주고, 태준이와 함께 다른 자리에서 무언가 상의하고 있다. 아마도 회사와의 문제를 자문받고 있을 것이다. 7시부터 11시까지 너무 오랫동안 앉아 있었다. 다리 운동도 할겸 밖으로 나와 바람좀 쐬고 있었는데 모두들 귀가하기 위해서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환이, 신택이, 승철이, 환철이, 태준이, 대익이는 이곳에서 밤샐 모양이다. 친구들아 함께 연이의 곁을 지키지 못해서 미안하고 고맙다.

민영이 차를 타고 귀가하면서 친구와 가족에 대해서 다시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하고 그 과정에서 친구와 가족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는 민영이의 말에 동감한다. 민영이 또한 나처럼 연이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갑자기 연합산행 이후에 글을 올리지 않고 있는 호균이에게 전화한번 해야겠다고 한다. 오랫동안 연락하지 못하고 있었던 몇몇 친구들이 떠오른다.

자주 만나는 친구들은 물론 가끔 보는 친구들에게도 자주 연락해야 겠다. 홈피에 올라오는 동창들의 글에 재미없는 댓글이라도 달도록 노력해야 겠다. 동창회 뿐만아니라 친구들의 모임에 가능하면 빠지지 않도록 해야겠다. 그것이 연이가 우리들에게 주고간 마지막 메시지가 아닐까.

연아 아직도 너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그럴 수밖에 없었던 너의 절대적인 고독감은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삶과 죽음이 물질 순환의 연속선상에 있음을 알기에 슬퍼하지도 않지만, 더 이상 너의 해맑은 미소를 볼 수가 없다는 것이 너무나 안타까울 뿐이다. 너를 내몰았던 인간들, 도움을 주지 못했던 친구들, 차마 떨치지 못하는 가족들 모두 모두 미련을 버리고 편안하게 잘 가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