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여전에 해외여행을 가자고 일곱팀의 부부가 적금을 부었다.

작년 12월에 만기가 되었고 우여곡절 끝에 네팀이 가는걸로 되었다.

휴양지에서 보내는것은 무의미 하다는 행동대장의 설득과 꼬임(?)에 넘어가

1월 10일부터 키나발루 산행을 하고 코타키나발루 리조트에서 쉬기로 하였다.

자유여행으로 가는걸로 하고 현지 여행사를 접촉했다.

산행이 아침 9시부터 1박2일에다 하루에 등반허가가 150명만 되기때문에

몇달전에 키나발루 산행과 리조트 수속을 했다.

( 해발 3,353m 산장에서 150명만 숙박할수 있고 다음날 새벽 2시30분에 정상도전 한다)

비행기표를 싸게 사려고 기다리다가 180명의 단체 때문에 저가항공을

택할수밖에 없었고 여기서부터 고생이 시작된다.

목포서 들뜬기분(?)으로 11시 출발 인천공항행 버스를 타고 갔는데

오후 8시30분발 비행기가 부품 교환으로 3시간 지연 출발한다.

제주다니는 비행기 정도여서 비좁은데다 같은 좌석의

태안 골프 단체 진상들이 승무원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발렌타인 2병으로 술 잔치를 벌인다.

그래도 비행기는 남중국해의 칠흑 같은 암흑을 뚫고 가고 있다.

등반에 지장은 없을런지 여러가지 생각에 5시간30분동안 잠이 오지 않았다.

코타키나발루 국제 공항에 도착

현지 여행사의 밴 두대로 1시간30분 동안 이동하여

키나발루 공원 프리미어 샬레 숙소에 6시 입실 

두시간정도 잠을 자라고 하는데 잘 수가 있나

씻고 짐 분리하고 본격적인 등산 베낭 꾸리면서 날을 샜다.

롯지에서 바라 본 키나발루 연봉과 여명에 따라 변화하는 경관에 감탄했다.

8시30분에 이동하여 남은 짐을 보관시킨 뒤

부랴부랴 낮선 현지 음식으로 아침식사하고

도시락 ( 샌드위치,사과,물 각1개씩) 배당 받고 산악 가이드 2명과 미팅한후

아이디 카드를 받아 체크하고 10시30분에 해발 1890m인 팀폰 게이트를 출발한다.

 (다음날 정상전 마지막 대피소에서 아이디카드 체크한다)

첫날 해발 1890m부터 출발해서 해발 3,353m 산장까지 6km이고

다음날 새벽3시부터 가는 해발 4,095.2m 정상까지 2.7km이다

산장까지 8개 구간으로 식수와 화장실, 휴식할 수 있는 쉘터가 있다.

해발 1890m 팀폰 게이트 출발 - 1910m 캔디스 쉘터 - 2134m 우바 쉘터 - 2225m 로위 쉘터 - 2385m 멤페닝 쉘터

       2621m 라양라양 쉘터 - 3000m 빌로사 쉘터 - 3190m 파카 케이브 쉘터 - 3353m 라반 라타 산장 도착

8명이 돌아가면서 구간을 책임지는 선등을 하고 맨 뒤에서 산악 가이드들이 따라온다.

처음부터 오르막이고 계단 사이즈도 굉장히 높다.

걸어서 처음 오는 높이 아직 실감이 나질 않는다.

엄청나게 흐르는 땀,점점 높아지는 고도와 습도로 힘들었지만

적절한 휴식과 농담속에 등반은 계속된다.

해발 2,400m 근처 점심전부터 비가 오기 시작했다.

점점 높아지는 고도와 습도,비옷,가파른 등산로가 등반속도를 더디게 한다.

해발 2,621m의 라양라양 휴게소에 도착 점심 식사 준비를 한다.

비는 더욱 심해져서 비가림막 아래에서만이 점심식사를 할 수 있을 정도이다.

산장에 도착할 때까지의 체력 비축을 위해 샌드위치로 억지 식사를 한다.

높아진 고도와 고갈된 체력 그리고 비...

힘들다.

모두들 말이 없다.

우울과 걱정이 전체적인 분위기를 짓누르고 있다.

점심이후 라양라양 쉘터에서부터 빌로사 쉘터까지 내 마누라 트랙(구간)이다.

계속되는 비로 등산로 곳곳이 웅덩이져 있고 미끄러운데

내가 가장 염려했던 저질체력 마누라가 등반 시작부터 날라간다.

약발인가? 신들린 것인가?

마치 선녀처럼(?) 분홍색 비옷을 입고 먼저 도착해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가 도착하면 "어서 오세요" 하면서 등반을 시작해 버린다.ㅠㅠ

나는 맨 뒤에서,앞서서 재촉하는 마누라에게 "니 뽕이다."라고 불만을 표출했고

산행대장이 형수님께 이른다고 했다.

약이 올랐지만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해발 3,000m 직전부터 어지럽기 시작하더니

갈수록 속이 미식거리고 토할려고 하면서 두통이 심하다.

제일 심각한것은 호흡 조절이 되질 않는다.

아는게 병이라고 나 혼자 고소증 예방 약을 안 먹었다.

말로만 듣던 고소증이 온 것이다.

악으로 깡으로 정말 처절하게 간다.

이미 말수를 잃은 지 오래다.

그래도 금방 숨을 헐떡이면서도 뒤쳐진 우리 일행 부부한팀과

부산 산악회 25명중에서도 고산증으로 고생하는 사람들과

서로 위로하면서 가는데 산장 불빛이 보인다.

불빛속의 산장은 왜 그리 먼지...

18시30분에 해발 3353m의 라반 라타 산장에 도착했다.

현지 여행사와 직접 접촉하여 비교적 비싼 등반 상품 때문인지

1층의 좋은 위치에 2층 침대 3개짜리의 좋은 방이다.

수면부족과 고산증으로 내 상태가 너무 안 좋아서

뜨거운 물은 한정되어 있는데 나 때문에 남자들이 먼저 샤워를 해 버려서

여자들은 커피포트 끊인 물을 찬물에 섞어 옹색한 샤워를 해야 했다.

2층 침대위에서 잠깐 휴식 취하고 나서 내가 이렇게 말했다.

"이 상태가 회복되지 않으면 나는 내일 새벽 정상도전 포기한다"

라반 라타 산장은 다양한 국적의 등반가들로 북적거렸다.

고산증 때문에 몹시 힘들어 하는 사람들도 중간 중간 보였지만

대부분의 사람들과 산악 가이드들,그리고 포터들은 무슨 얘기가 그리 즐거운지...

고산증 때문에 다들 입맛이 없어서 식사를 못하고 있는데

우리 산행대장만 현지인 취급을 받으면서도 게걸스럽게 잘도 먹는다.

저녁은 오심과 허리를 펴면 숨을 쉴수 없어서 먹는둥 마는둥

고산증 약을 이번에는 꼭 복용했다.ㅋㅋ

들뜬 산장 분위기를 뒤로 한 채 7시 넘어서 바로 취침에 들어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들의 영역인 3,300m 에서는 고산증으로 잠을 이룰수가 없다던데

우리는 비행기 고장으로 날밤을 샜지 않는가!!!

추위에 약한 제수씨 한 분 빼고 모두들 곤히 잤다.

새벽 2시에 기상해보니 나와 후배의 몸 상태가 상당히 회복되었다.

우리일행은 아침을 컵라면으로 해결하고

헤드랜턴,겨울복장하고 3시부터 산행 시작했다.

신들의 영역이어서 그런가 별들이 정말 총총하게 보였다.

숲 지대에 이어서 암릉 구간 초입부는

밧줄잡고 암벽등반하다시피 계속 올라간다.

여자들이 힘들어 한다.

암반과 가파른 계단의 반복

나랑 후배부부의 상태가 급격히 안 좋아지면서 해발 3810m의

마지막 휴게소인 사얏-사얏 대피소에 5시경에 도착해서 등정 등록후 출발했다.

완전히 비가 그친 하늘엔 무수한 별들...

기온은 생각보다 푸근했는데 완전히 암반구간이고

랜턴 불빛과 목소리만으로 위치를 대략 짐작 할 수 있다.

마지막 대피소에서 정상까지 1.7km 가야한다.

고도를 높여가며 힘든 산행이 계속되자 우리 일행도

선두 그룹 3명,중간 2명,후위 3명으로 형성되어 갔다.

점점 간격이 벌여지더니,나중에는 목소리에 서로 반응이 없다.

나랑,불면과 배앓이로 고생하는 후배부부가 많이 뒤쳐져 있었다.

기다리고 있는 산행 대장을 만나서 부부를 인계하고

많이 회복된 나는 내 페이스대로 가다가 34살의 싱가포르인과 동행했다.

뒤쳐진 일행은 성 요한 봉 앞에서구름위로 떠 오르는 태양을 보았다.

중간에 포기하고 내려오는 많은 사람들을 보자 걱정이 많아졌다.

"일출을 보았는데 꼭 정상 가야하냐" 라고 하면서 말하지만

고난이 동반과 독려를 이길 수는 없지 아니한가!

일출 보다는 전원 등정과 사고 없는 완주가 목표이다.

( 현지 산악 가이드들이 데리고 내려온다

셀파들이 의무적으로 붙어야 하고 우리도 두명이 동행했다)

후배부부의 다섯걸음후 30초 휴식 패턴을 반복

드디어 우리의 열렬한 환호속에 아침 7시에 해발 4,095.2m의 동남아 최고봉,

키나발루 산 정상인 로우피크에 올라섰다.

정상에 오른 기쁨을 만끽한다.

정상 아래에 구름이 있고 그 밑에 산들 봉우리가 보인다.

사진 찍고 셀파들하고 샤케 한잔씩 하면서 축하한다.

경관 감상 등을 뒤로 하고 하산을 시작

어둠속에 지나왔던 등반로를 감상하며 내려온다.

한 덩어리의 거대한 화강암이 정상부 대부분을 이루고 있다.

장대한 자연의 경이로움을 만끽하며 암반부의 하산은 작열하는 태양과

비에 젖은 암반의 미끄러움이 힘들게 했다.

끝없는 암릉 하산길!

우리가 이 길을 어떻게 올라왔는지...

암벽등반 구간의 하산은 보이는 높이만큼 두려움도 컸다. 

대낮에는 포기하는 사람이 많았을것 같다.

그래서 옛말에 눈이 제일 게으르다고 하지 않앗나.

고도가 낮아지면서 고소증을 호소하던 사람들의 상태은 급속히 회복되었다.

나는 날라갈것 같았다.

반가운 라반 라타 산장에 10시경에 도착했다.

등정의 흥분을 안고 다들 즐겁게 점심 식사를 했다.

이젠 고산증의 고통도 등정 실패의 불안도 없다.

다시 베낭 꾸리고 라반 라타 산장에서 11시에 하산 시작

올라올때의 등반자 트랙을 역순으로 다시 진행하여 빠르게 내려왔다. 

멀고도 힘들고 험악한 하산길!!!

마지막 트랙에서는 나를 선두로 가이드까지 10명이

오후 3시30분경에 출발지인 팀폰 게이트를 통과했다.

게이트에서 아이디 카드 체크

하산 완료!!!

전원 등정,전원 무사고 완주를 성공한 것이다.

우리 일행과 우리 영혼에 감사,감사,감사!!!

밴을 타고 본부로 이동하여

이틀 동안 우리와 함께 동고동락했던 산악가이드로부터

정상 등정 확인서를 환호속에 받았다.

목포 하당 입암산을 한시간 돌아도 헥헥거리는 일부

저질 체력들이 있어서 산행할것을 걱정햇는데 웬일인가?

내가 고소증으로 고통받고 힘들줄이야......

무모한 도전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