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회를 강남구에서 한다고 한다. 장소가 가까우니 모처럼 동창 모임 1차에 참석할 수 있겠다. 7시에 끝나고 집까지 40분, 집에서 상리까지 10분, 루스타임 10분, 그래도 1시간 정도는 늦어질 것 같다. 실제로는 금요일 교통량이 많아서 1시간 20분 정도 늦었다. 다행히도(?) 성호, 옥현이, 삼태가 나보다 더 늦게 와서 덜 미안하기는 했다.

자연스럽게 늦게 온 사람들 자리로 갔더니 재호, 민영이가 옆에 있었고, 곧이어 성호, 옥현이, 삼태가 합석했다. 재호는 여전히 웃기만 하고 아무 말이 없다. 성호와 민영이는 금주해야 되는 까닭으로 민영이의 원성에도 불구하고 사이다를 시켜서 건배했다. 옥현이는 늦은 벌로 벌주 3잔을 연거푸 마시게 했다(뭐 묻은 개가 뭐 묻은 개 뭐란다고). 화장실에서 재호와 옥현이를 함께 만났다. 그곳에서 문태중학교 동창 모임 얘기가 나왔는데 빠른 시일 내에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 날은 성호와 얘기를 많이 했는데 주로 건강에 대한 것이었다. 영철이는 뭐가 급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자리를 떴다.

삼태는 삭발상태였다. 자유무역협정 반대를 위해서 서울에서 단식투쟁 중이란다. 농민이 아닌 자가 농민의 아픔을 알 수는 없지만, 한 때 의권 투쟁에서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투쟁 중인 단체에서의 집행부는 대 회원, 대 정부, 대 국민, 게다가 투쟁 방법이나 노선에 대한 집행부 내부 알력까지 겹치면 그 어려움은 상상을 초월한다. 어쨌거나 건강만큼은 손상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성만이는 이번에 국립중앙박물관문화재단 사장에 임명되었다고 한다. 본인 생각과는 전혀 다른 엉뚱한 자리라고 한다. 이번에 처음보고 알게 된 동창이고, 그 자리의 중요성을 알지는 못하지만 늦게나마 축하한다. 유홍준 문화재청장 사건이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성만이 뿐만이 아니라 공인이 된 우리 동창들에게 끝까지 자랑스러운 동창으로 남을 수 있도록 우리가 도와야 할 것 같다. 가까운 지인들의 부탁으로 무리수를 둠으로 인해 중도 하차한 많은 사람들을 보아왔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가보지 못한 중앙박물관을 시간 내서 찾아보는 것만으로도 성만이를 돕는 것이 되겠지.

중간에 세필이가 간다고 한다. 늦어서 보지는 못했지만 슬라이드 영상강의가 있었나 보다. 배아줄기세포에 관한한 국내 2인자라면 섭섭하겠지? 1인자라는 것을 시간이 증명해줄 거야. 교내 행사 때마다 팝송 "feeling"을 불렀던 것으로 기억된다, 눈감고 없는 폼 다잡으면서. 지금도 부르는지 궁금하다. 오늘은 내가 소주 한잔 받는 것으로 끝냈다. 술을 못 마시는 건지 안 마시는 건지, 설마 건강에 이상은 없겠지?

만성이가 중간에 보자고 해서 자리를 옮겼다. 불경기에 예술을 하는 동창들이 많이 어렵다고 한다. 최대한 지출을 줄이기 위해 생필품도 아껴 쓰는 상황이니 정신적 만족을 위한 예술에 투자하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아무리 부인을 하더라도 부를 기반으로 예술이 꽃피웠음은 인정해야 할 것 같다. 만성이 개인적으로 동창들을 도울 방도를 찾고 있다고 한다. 아쉽게도 내가 추구하는 방향과 달라서 많이 미안했다. 개인적으로 미술에는 젬병이고 음악회와 뮤지칼을 주로 감상한다.

주위를 보니 카리스마 넘치는 병관이가 있다. 그 옆에는 신재가 있고, 만성이와 얘기하느라고 많은 얘기를 못했다. 신재는 역시 시니칼한 표정이 특징이다. 카리스마는 며칠 후에 다시 보겠지. 건너편 병일이가 가게 때문에 먼저 가면서 이따 보자고 한다. 병일이 가게가 오늘의 종착역이란 생각이 들었다. 맨 끝에 반장 도형이가 있고 그 옆에 소식통 일홍이도 있었다. 자리를 옮겨 12월 반창회 모임에 대해서 얘기를 했는데, 도형이가 대표이사로 있는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 공연을 보고 공연 후에 반창회를 갖기로 했으며 덕봉이와 만성이도 이에 찬성했다. 건너편에 있는 상인이는 무슨 내용인지 인상이와 얘기하는데 열중이다. 사실은 당시에는 기억을 못하고 뒤늦게 생각이 났다. 소주 한잔 권하지 못해서 미안하다.

일홍이 옆에 기호가 있다. 고교시절 공부에 관한한 내 모델이 되었다. 모든 일에 적극적이고 열심이었다. 오늘도 구리 운동장에서 축구하고 오는 중이란다. 지금도 후배들이 공차고 있으니 지금 함께 가자고 한다. 농담인지 진담인지, 젊은 애들과 함께 지내면 4차원에서 살게 되나 보다. 다음에 보기로 했으니 그 때 다시 정신세계를 자세히 살펴봐야겠다.

다시 내 자리로 돌아왔는데 재호와 스머프(성호)가 가고 없다. 재호가 더 이상 나를 신뢰하지 않나 보다, 오늘 끝까지 같이 가기로 했는데. 스머프는 내가 술을 한잔도 못 마시게 해서 삐졌나 보다. 다행히 키메라(재령)와 하이에나(민영)는 자리를 지키고 있다. 민영이의 입담은 당할 사람이 없는 것 같다. 좌중을 휘어잡고 있다. 뜻밖에도 정표가 합석하고 있었다. 하이에나가 초교시절 시계를 찬 두 명 중의 한 명이라고 한다. 초등학교 시절 귀공자 이미지가 희미하게 기억난다. 그 품위는 지금도 여전하다. 승돈이가 30주년 기금에 대해서 언급했다. 대부분 약속만 했지 아직 입금이 안 된 상태라고 한다. 우리 반은 12월 반창회 때 완납 할 수 있겠지. 어울리지 않게 우수개 얘기를 시리즈로 했는데 기억나지가 않는다. 웃고 있지만 속은 답답하겠지. 어려운 시기에 힘든 자리를 맡아 고생 많이 한다.

나를 비롯해서 오늘은 새로운 얼굴이 많이 나왔다고 한다. 그동안 안면이 있는 동창보다 초면인 동창이 상당히 많았다. 내 머리로 모두 외우는 것은 불가능하다. 처음부터 외우는 것을 포기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우리 반 형록이가 생각나고, 하이에나 옆에 앉았던 체격 좋은 동창과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에 대해서 언급했던 동창, 성호와 민영이와 함께 소주 대신 사이다로 건배했던 동창의 이름들이 기억나지 않는다. 미안하다, 다음에 만나면 꼭 이름을 기억할 것이다.

보강의 사진에는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는 것 같다. 사진 속의 나는 항상 실물보다 훨씬 더 잘 나오는데 왜 그렇지? 솔직히 사진 찍을 당시는 찍는 동창이 보강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만나면 술 한잔 하기로 했었는데, 아쉽다. 신흥이는 청계산 옛골토성 모임에서 동창 중에서 가장 늙었다고 한 내 얘기가 뼈에 사무쳤나 보다. 보자마자 대뜸, 오늘은 괜찮지 않느냐고 한다. 저번에는 머리에 신경 쓰지 않아서 그랬다는데 내가 보기에는 오늘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인상이는 회장 역할로 열심이다. 내가 참석한 이후로 자리를 2번은 돌아다닌 것 같은데 그 전까지 하면 3번은 돌아다녔을 것 같다. 술도 마시지 않으면서 저리 돌아다니는 것도 능력이다. 전화는 또 어디로 그렇게 해대는지. 어쨌거나 회장단의 노력으로 동창회가 오늘과 같은 대성황을 맞았으니 고마울 따름이다.

이차 생맥주집에서 기호, 재령이와 함께 합석했으며 분당에서 한번 만나자는 얘기가 있었는데 벌써 기다려진다. 친구들과 함께 병일이 가게로 가던 중에 만성이가 둘이서만 할 얘기가 있다고 한다. 아까 도움을 주지 못해서 미안함 때문에 친구들에게 뒤따라간다고 먼저 가 있으라고 했다. 만성이가 아는 가게에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면서 술을 마시다보니 어느 순간부터 기억이 나질 않는다. 깨어보니 집이었다. 다음날 만성이에게서 전화가 와서 상황을 알아보니 자신도 깨어보니 집이었다고 한다. 핸드폰을 열어보니 친구들에게서 여러통의 전화와 음성 메시지가 와 있었다. 친구가 아니라 역적이 되는 순간이었다. 친구들아 정말 미안하다. 약속을 지키지 못해서.

1년에 한두번은 술 마시다가 필름이 끊기는 경우가 있다. 올해는 이미 두 번 끊긴 것 같다. 기억나지 않는 이후의 상황이 염려되어 가급적 절제를 하려고 노력하는데, 이번에는 쉽지가 않았다. 우선 집사람이 딸내미 보러 일본에 간 상태라 아들놈과 둘이서 먹거리를 해결해 왔는데 부실할 수밖에 없었다. 전 날 모임이 있어서 전작을 한 상태라 술에 대한 몸의 역치가 낮아졌고, 당일은 늦어서 식사를 못한데다가 해물과 푸성귀 안주마저도 제대로 먹지도 않으면서 소주만 마셨으며 이후로 맥주, 양주를 혼합했으니 필름 끊기는 것이 이해가 되었다. 차라리 친구들에게 가지 않았던 것이 잘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혹시라도 그 상태에서 실수라도 한다면 지금보다 더 면목이 서지 않을 것이다.

그날의 여파로 토요일 진료 겨우 마치고 도저히 몸을 가눌 수가 없어서 저녁 모임 두 군데 모두 펑크 내고 집에서 절대 안정을 취했다. 이 글을 올려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여진다. 당분간 글을 쓰지 않겠다고 했는데, 더구나 친구들에게 역적이 된 상태인데... 그러나 변명을 위해서라도 올려야겠다. 친구들아 그날 많이 미안했다. 그래도 나의 부족한 면은 니들이 채워주고 나의 실수는 니들이 이해해주어야하지 않겠냐?  많이 많이 사랑한다, 친구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