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시 반에 일어나 하체 상태를 점검하니 종아리가 약간 뻐근하다. 오늘 산행을 위해 전지훈련으로 6일(현충일) 오후에 청계산을 3시간 20분 동안 쉼 없이 산행했더니 그 여파가 아직도 남아 있다.

저번 주 토요일(2일) 한목회(한양대 목고 동문회)족구 모임에서 오늘 산행 얘기가 나와서 선배(김진:27회)와 후배(최충기:31회)가 함께 산행하기로 했다. 신재의 도움이 없어도 될 것 같다. 회룡역에 도착하니 7시 반이다. 몸을 풀고 있으니 후배가 왔고, 8시 20분쯤에서야 선배가 도착하여 산행을 시작했다.

저번 달 불암산에서 수락산으로 산행할 때 기차역에서 산행 초입을 찾지 못하여 알바했던 경험이 있어서 이번에는 회룡역에서 산행 초입까지의 경로를 자세히 기록했다. 네이버 지도상 경로에 있던 대봉빌라가 재개발되면서 다른 아파트로 바뀌어 또 다시 헤매기 시작했다. 결국 20분정도 알바하여 산행 초입에 이르렀다.

큰길로 한참을 가는데 범골 능선으로 빠지는 곳이 보이지 않는다. 기억을 되돌아보니 산행 지도가 있는 초입에서 안골 쪽으로 갔어야 하는데 지나친 것이다. 이제는 어쩔 수 없이 회룡계곡으로 가야한다. 결국 사패산 능선을 더 길게 왕복할 수밖에.

선배의 산행 능력이 예사롭지 않다. 평소에 원정 산행을 자주 했던 상태로, 가지 않는 길을 찾아가기도 하고, 오르막 계단에서 후배와 내가 뒤따라 붙느라고 숨이 턱에 찬다. 사패능선에 올라 선배가 가져온 오이 하나씩을 먹었다. 이 무거운 오이를 가져오다니, 둘 중에 하나다. 후배들을 너무 사랑했거나, 장시간 산행을 잘 모르거나. 선배의 산행 능력에 의심이 간다. 장시간 산행은 최대한 짐을 줄여야 한다. 따라서 콤팩트한 칼로리의 음식이 필요하다. 오이는 칼로리는 없이 무겁기만 해서 매우 비효율적인 음식이다.

사패능선을 따라 사패산으로 가는 길에 처음 목표였던 범골 능선길이 나온다. 거의 두 배의 능선 길을 알바한 샘이다. 사패산에 이르니 거의 10시 50분이다. 시원한 바람과 확 트인 전망으로 산행의 보람이 느껴진다. 선배가 가져온 살얼음이 있는 막걸리를 종이컵으로 두잔씩 마시다 보니 감로주가 따로 없다. 두 사람은 아침을 먹지 않아서 도시락을 먹기로 했다. 나는 아침을 먹어서 일단 보류하고 막걸리만 마셨다.

사패산 정상에서 선배와 함께

자운봉을 향해서 출발하는데 자꾸만 생트림이 올라온다. 막걸리 영향이겠다. 두 사람을 보니 도시락과 막걸리로 완전히 풀려있다. 자운봉이 멀리도 느껴진다. 초반의 기운은 어디로 사라지고 오르막에서 선배가 계속 뒤쳐진다. 후배는 힘든 와중에도 내게 바짝 붙어 따라온다. 급기야 선배의 우측 대퇴부에 쥐가 내려서 일단 가까운데서 쉬기로 했다. 바위에 누운 상태에서 스트레칭 하는 방법을 알려주는데 맛사지까지 해달라는 농담을 한다. 그 놈의 여유는... 요즘은 산행보다 한강에서 루어 낙시를 즐긴다고 한다. 핑계도 좋다.

이 상태로 가면 목표를 수정해야 한다. 자운봉을 지나서 탈출할 수도 있겠다. 취미의 다변화가 필요하다는 선배의 말에 후배가 맞장구치면서 스포츠, 여행에 대한 생각들이 무수히 떠다닌다, 일명 flight of idea, 정신분열환자의 주된 증상중의 하나인데. 춤을 배우고 싶고 북유럽을 여행하고 싶다는 결론이 있어서 환자는 아닌 것 같다.

산불감시초소에서

자운봉으로 가는 중에 우회로를 두 번이나 돌았다. 첫 번째는 위치를 모르겠고, 두 번째는 Y곡을 통과하는 코스다. 언젠가는 한번 가봐야 할 곳이다. 힘든 산행 끝에 자운봉에 도달하니 1시경이다. 신선대를 보니 역시나 사람들로 가득하다. 신선대 오르는 것은 포기하고 자운봉과 신선대를 배경으로 인증사진만 날렸다. 쉬어서 기운을 차려서인지 선배가 탈출하지 말고 원래의 코스대로 가자고 한다. 감지덕지.

자운봉과 신선대를 배경으로

자운봉을 지나 내 도시락을 먹기로 했다. 탄수화물(밥), 단백질(달걀장조림), 야채(김치), 애피타이저(마늘짱아치), 과일로 된 균형식이다. 후배는 등산하기 마치 좋다고 밥은 먹지 않고 마늘짱아치와 과일만 먹고, 선배는 밥 1/3과 마늘짱아치, 김치, 과일을 먹는다. 나머지는 모두 내 차지다. 후배는 장기 산행을 위해서 식사조절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오늘 뼈저리게 느꼈을 것이다. 다음 산행에 많은 도움이 되겠지. 산행을 자주 하는 것도 같던데...

자운봉에서 우이암까지 가는 길은 지도상으로 보면 내리막길인데 중간에 오르막 바위(칼바위)도 있다. 쥐가 내린 이후로 오르막길을 힘들어했던 선배가 조금은 걱정이 된다. 내리막길로 판단하고 원래 코스를 강행하기로 했던 것이다. 그런데 웬걸 오르막인데도 앞장서서 잘 오르고 있다. 다리가 완전히 회복되었나 보다. 시원한 바람 때문인가? 실제로 자운봉까지는 바람을 거의 느끼지 못했다.

또다른 선배(박춘원:27회)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관악산을 가다보니 오늘 산행한다는 문자를 받은 것이 생각났다고 한다. 아주 친한 선배라서 따로 내가 문자를 보냈던 것이다. 지금은 하산하여 막걸리 한잔하고 있는 중이란다. 나이도 많지 않은데 벌써 치매가 시작될 리도 없고... 일단 수유역에서 합류하기로 했다.

우이암에 조금 못미쳐서 전망대가 있다. 도봉산을 남쪽에서 바라보는 전경이다. 울창한 푸른 숲을 배경으로 거대한 회백색의 암봉들이 일렬 횡대로 줄지어 있는 모습이 장관이다. 우측부터 선인봉, 만장봉, 자운봉, 신선대, 칼바위, 우봉, 오봉 순이다. 후배의 입에서 감탄사가 계속해서 터져 나온다.

우이암에 도착하니 암벽 등반하는 사람들이 우이암 위에서 즐기고 있다. 멀리서 보는 것과는 달리 가까이서 보니 사진에 담아 둘만 하다. 그때 춘원 선배에게서 전화가 왔다. 마침 바테리가 다 되어 전화번호를 후배 폰에 옮기는 과정에서 사진 촬영을 생략하고 지나치게 되었다. 오늘 산행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이다.

우이암 멀리서

원래 우이암에서 원통사쪽으로 내려가기로 했으나, 후배가 조금 험한 우이 남능선으로 가자고 한다. 이제는 후배도 기운이 솟나보다. 이후로는 줄곧 내리막길이다. 경사가 가파르고, 잠깐이지만 줄 타고 내려가는 절벽도 있어서 스릴 만점이다. 선배 말에 따르면 오늘의 클라이맥스라고 한다.

내리막길에서는 날다람쥐가 따로 없다. 사진 찍느라 잠깐 머뭇거리면 선배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멀리서 후배의 뒷모습만 보인다. 내리막길에서 다리 하중을 줄이기 위해서 속도 조절과 스틱 사용으로 도저히 따라 갈 수가 없다. 내리막길에서 다리에 미치는 하중이 오르막길에서의 하중보다 6배나 된다고 한다. 따라서 내리막길에서의 하중 조절이 무릎 연골 손상 방지와 산행을 오래 하기 위한 필수조건이 된다. 어쨋거나 가다보면 쉬면서 기다리고 있겠지.

처음 본 소나무가 있어서 올려본다. 일정한 간격으로 이끼로 둘러싸인 띠가 있는 소나무로 이끼와 소나무의 공생관계인가? 동후나 경호가 알려주겠지.

우이동에 도착하니 거의 4시다. 7시간 정도 산행한 셈이다. 주변이 공사로 어수선하다. 버스정류장으로 가면서 하드 하나씩 사먹었다. 선배가 오늘 맏형 역할을 톡톡히 한 셈이다. 오이에 막걸리에 하드까지. 후배 왈, 진이 선배와는 유람산행을, 나와는 극기산행을 하는 것 같다고 한다. 산행에는 두 가지 모두 포함되어 있으니 일부러 나눌 필요는 없겠지.

수유역에 도착하여 일보고 씻고 짐 정리하고 나니 춘원 선배가 호프집에 와있다. 얼굴 본지가 얼마만인가. 한양대 경제학과 교수로 있지만 어머니를 모시느라 수도권 지방에서 살고 있는데, 바빠질 것 같아서 신림동으로 이사 왔다고 한다. 이제까지 공부가 취미고 재미있다는 사람 두번 봤는데 그 중의 한사람이다. 공부하느라 시기를 놓쳐서 아직도 노총각이다. 우리반 반창 동철이가 생각난다. 이제는 자주 볼 수 있겠다.

생맥주가 얼마나 맛있고 시원했던지, 무한정 들어간다. 한 2000cc는 마신 것 같다. 의외로 진이 선배와 후배가 마시지를 못한다. 후배는 비몽사몽이다. 오늘 무리하기는 했나보다. 두 선배가 서로 사겠다고 하자, 한 사람은 2차를 사라고 했더니, 두 선배가 펄쩍 뛴다. 후배를 깨우기 위한 농담인데 놀라기는. 힘든 건 저도 마찬가지랍니다.

호프집 아주머니 솜씨

집 방향이 같아서 진이 선배와 함께 오면서 미래에 대한 얘기를 많이 들었다. 진이 선배는 압구정동에서 성형외과를 하고 있는데 소아과보다도 더 외모에 신경을 써야 한다고 한다. 흰머리 나거나 안경을 쓰면 끝이라는 것이다. 아이들 모두 대학 끝나면 시골에 내려가 자연과 함께 일반의사로 살고 싶다고 한다. 공감이 가는 얘기다. 나의 미래는 어떨까? 변화무쌍한 의료 환경에서 잘 버텨 나갈 수 있을런지. 미래는 미래고 우선 춘원 선배 장가부터 보내기로 했다. 조만간 진이 선배가 참한 여자를 소개해줄 거라고 하니 국수 먹을 준비나 해야겠다. 집에 도착하니 8시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