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길에 드디어 서다(2)!!
(버리미기재~배너미미평전~은티마을, 15구간, 18.79Km)
 
 "말티노! 백두대간 15구간 신청합니다. 아니 앞으로 쭈~욱 고정 배차해 주세여....."
 
 지난 2월 6일, 백두대간 14구간 초행길 이후 십 여일을 뭉그적대다 등산클럽 산행 예약 방에 냉큼 던져 버린 멘트다.
 백두대간 등정 본격 참여 여부를 두고 나이, 체력, 등산 입문 시의 목적, 여유시간 등을 따져 가며 고민을 하다 내린 결론!
 
 그래! 한 달에 1회,,,, 3년 동안 꾸준히 하면 남쪽(북한 제외) 구간은 완주가 가능하니 나한테 무리한 목표는 아닐 터...도리어 지금 50대 초반이 마지막 기회일 지도 모른다. 나의 산행 이력에서 이번 기회를 놓치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만 같다.
 조물주께서 나에게 건성으로 슬쩍 던져 주는 미끼!! 미끼는 물어 주는 게 낚시꾼에 대한 예의다.........
.......결정은 해 버렸지만 자질구레한 걱정은 이만 저만이 아니다.
 
 세상을 웬만큼 살다 보니 그렇다. 인생고비마다 무수히 많은 선택들을 하지만 그 결과는......사전 정보 수집 노력이나 판단 과정의 합리성과는 잘 일치하지는 않더라는 사실.........사람이 늙어 간다는 것이 이런 이치를 깨닫고 또 감정적으로 수용할 여유를 갖추어 가는 것은 아닐까???

 
1. 산행구간.

  버리미기재-장성봉-막장봉-악휘봉-은치재-구왕봉-지름티재-희양산-배너미평전-은티마을(18.79Km)
  : 2010년 3월 5~6일(무박), 총 산행시간 8시간 30분 소요
  
 
2. 산행준비.

 지난 14구간이 워낙 힘들었던 터라 이번에도 준비과정에 나름 만전을 기한다. 여기저기서 주워 들은 대로 무릎/허벅지/장딴지 강화를 위한 특별 훈련을 하였다.

 ①서서 발가락/뒤꿈치 앞뒤로 들기
 ②의자에서 앉은 채로 양 발 들어 올리기
 ③기마 자세로 히프 들어 올리기 등등
 
 회사와 집에서 틈틈이 하다 보니 괜히 주위 보기가 민망하다. 남성 강화 훈련과 진 배 없다. 그래! 모든 도(道)는 하나로 통한다고 하지 않는가? 등산이나 거시기나 모두 오르내리는 건 마찬가지 인뎅~~~~~요즘 법정스님 선정 후로 28홈피에 도에 관한 토론으로 시끌한 것이 떠올라 슬며시 웃음이 떠오른다. 모두들 열심히 논쟁해라!! 나는 길(道)을 피해 산(山)으로 간다!!

 파손되었던 스틱도 A/S받고 먹을 것 준비는 최소로 하였다. 약밥과 양갱, 영양 바만 챙겼다. 컵라면이 나를 고민하게 하였지만 과감하게 뺐다. 배낭 무게를 최소화 하자!! 나름 터득한 지혜다. 물은 1.8리터면 될 것 같았다.
 
 그런데 일기예보가 심상치 않다. 남부지방은 비가 오고 있다. 기온도 많이 내려 간단다. 3월 6일인데 설마 웬 눈??? 그럼 충북 괴산 지역은??? 산이라 100% 눈 일 텐데.......또 아이젠과 씨름해야 하나???? 참! 이번은 무박(야간산행)인데 눈까지 오면????? 그래도 겨울 비보다는 낫겠지.....???
 
 새벽 2시반에 도착한 산행 들머리인 버리미기재 근처!! 산은 나의 일말의 희망들을 철저히 배신했다. 영하의 날씨에 눈보라/ 짙은 안개/ 틈틈이 내리는 이슬비/ 습설과 빙판/ 진흙 진창길.......모든 고난은 항상 이렇게 패키지로 오는가????ㅠㅠㅠㅠㅠ
 
 
3. 시산제.

 금요일(3/5) 밤 11시 10분에 안산 중앙역에서 일행과 만나 서로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일단 잠을 자 두어야 할 것 같았다. 그러나 쉬이 잠은 들지 못하고 뒤척이길 반복하다보니 어느새 도착이란다. 임원진들이 신속히 떡/과일/돼지머리 등 제사상을 신속히 차린다. 추운 상태에서도 신속하고 일사 불란한 손놀림이 예사롭지 않다.
 

.......축문도 낭독하고........한해 동안 안전산행 기원......등산 중에 숨진 산우(순국열사?)들에 대한 묵념..... 그리고 마지막으로 각자의 소망과 축원을 담아 정성껏 절하고 파란 지폐 한 장을 돼지님께 시주한다.

(부디 이번 대학 입시에서 착하기만 한 둘째 아들놈! 고생하고 정성을 들인 만큼 좋은 결과 얻기를 기원합니다! 부모님도 건강하게 좀더 오래 사셨으면........마누라도 올해는 산에 자주 따라 오게 도우소서!......찬찬히 생각해 보니 정작 나 자신에 대한 기원은 없었던 것 같다.)
 
 
4. 입구가 없다!

 이 번 구간을 이렇게 힘든 야간 산행으로 한 이유는 버리미기재 근처가 입산 금지 구역이라서 공원 관리인의 감시를 피하기 위함이다. 기나긴 백두대간 길 중 일부 금지구역은 빼먹고 가도 될 법 한데 산꾼들의 완벽 추구 성향 땜에 어쩔 수 없단다. 위법이긴 한데.....아마 산신령님께서도 모른 채 하시겠지!
 
 차에서 내리자 마자 신속히 무리지어 철조망 주변 입구를 찾는데.....깜깜한 상태라 주변이 분간이 안된다. 베테랑들도 여기저기 왔다갔다 헤매기를 반복한다. 죄를 짓는 몸이라 마음은 바쁜데....큰 소리도 낼 수가 없다. 여러 번 산속위로 올라가다 길이 끊겨 다시 도로로 후진하기를 반복하였다. 그러던 중 누군가 백두대간 "노란 리본"을 찾았단다!!! 휴~~죄 짓고는 못살지.....
 
 사실 백두대간 산행에서는 길을 제대로 잡아가기가 만만치 않다. 수시로 알바를 당해 고초를 겪기도 하고 엉뚱한 곳으로 내려 오기도 한단다. 우리 클럽도 두 달 전에 선두가 길을 잘못 인도해 전원이 대형 알바를 당하는 참사를 입었단다. 결국 그 날 백두대간 산행은 클럽 역사에서 지워지는 비극을 겪었고....당일 산행대장은 회원들의 눈총에 지금껏 알아서 근신 중이라는 말씀....
 
 길을 찾자 마자 이번에도 선두는 들입다 뛰기 시작한다.
  
(아침 동틀 무렵!!! 안개에 쌓인 환장적인 전경!)

5. 눈과 비와 안개와......그리고!

 헤드랜턴을 빛 삼아 모두들 달려간다. 야간 산행은 꼭 일행이 있어야 용이하다. 등산로 확인과 시야확보 때문이다. 그런데 눈과 비와 안개, 3종 세트가 자꾸 앞길을 막는다. 북쪽 사면은 빙판이고 남쪽사면은 습설이다. 짙은 안개 때문에 가시거리가 극히 짧다. 그래도 지난 산행의 경험을 살려 이번에는 선두 1/3 그룹 쯤에 위치하였다. 아니 죽기살기로 따라 붙었다. 민망한 남성 강화 훈련 때문이었는지, 꾸준한 "토요 나 홀로 20Km 산행" 덕분이었는지는 몰라도 체력적으로는 큰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치명적인 핸디캡!

①안경 착용자의 비극! 입김과 땀 때문에 습기가 계속 찬다. 닦아도 그 때뿐, 10초도 안되어 다시 뿌옇게 된다. 온도가 낮아 얼면 바로 성에로 변한다. 야간에 시야는 어두운데 정말 고역이다. 산행 내내 걸음걸음 수시로 안경을 닦기를 수 백 번은 족히 했을 것 같다. 에라~~ 라식을 지금이라도 해 버려???
(이번 산행을 끝까지 함께 해 준 강모 대장의 한마디! 안경에 열선을 깔든지, 아님 와이퍼를 설치하면 간단하대나~~어쩐대나???? 그래 니 잘났다!!!)
  
(참! 이놈의 성에.......)

②알다시피 내가 길이가 좀 짧다. 그런데 이게 암릉 길에서는 영 아니다. 발이 짧아 오르거나 내리막길에서 발끝이 잘 안 닿는 경우가 꽤 된다. 남들은 쉽게 가는데......ㅠㅠㅠㅠ
그런데 이번에 깨달은 사실! 야간 산행 시 키 큰 작자들이 나무에 머리를 수시로 부딪치는데 나는 여유만만~~~ 그래! 쌤통이다~~~ 그래도 뒷사람을 위해 "머리조심!" 외침은 꼭 따라 해 주었다.
 
③이 놈의 스틱이 또 말썽이다. 지난 번 산행 때 너무 단단히 고정하다 스토퍼가 부숴진 경험 때문에 세게 조이지 않아서인지 자꾸만 스틱이 안으로 접혀 들어간다. 그래도 참기로 했다. 부서지는 것보다는 낫겠지......이래서 나에게 "스틱 파손 스트레스"가 하나 더 추가되었다.
 
④참 이상한 게 이 클럽 회원들은 물을 먹지 않는다. 1~2시간이 지나면 물을 보충해 주어야 하는 데 도무지 그럴 기미가 없다. 배낭을 내리고 물통을 꺼내 먹어야 하는데 일행을 놓치므로 그럴 짬이 없다. 나중에 틈을 내어 물어 보니......이런 된장할!!!! 배낭 안의 수낭에 연결된 호스를 통해 걸으면서 틈틈이 빨아 드신단다!!! 그래! 너 또 잘났다!
 
 
6. 희양산 가는 길!

 오르막! 내리막! 온갖 악조건과 끊임없이 싸우면서 걷고....또 걷고.....쉼 없이 가는데.......다섯 시간 남짓 걸었나 보다.
진흙 투성이의 진창길이 갑자기 나타났다. 그리고 한없는 오르막이다. 자꾸 뒤로 미끌리고 바지와 신발이 금새 흙투성이가 되었다. 현재 일행이 다섯! 악착같이 오른다. 누군가 이게 구왕봉 쯤 되겠단다. 이 위에서 아침을 간단히 먹고 2시간쯤 되면 산행 완료란다. 이 말에 힘을 얻어 오르고 또 오르고.......정상에서 아침을 먹었다. 지난 산행보다는 훨 낫다. 시산제 제사상의 떡과 약밥, 과일로 요기를 하니 한결 힘이 솟아났다. 이제 2시간만 가면 된다.
 
 그런데 이런.....계속 내려 가기만 한다. 대간 길이나 종주 길은 내리막길이 두렵다. 그만큼 다시 올라가야 하기 때문이다. 밭이 있는 언저리 잘 다듬어진 봉분이 몇 개 있다. 뭔가 이상하다.....한 참을 지도를 보다가 동행이 아까 아침 먹은 장소가 구왕봉이 아니란다. 여기서 50분을 더 가야 된다나.....갑자기 힘이 빠진다. 그냥 이 길 따라 탈출해 버릴까??? 약한 생각도 잠시.....동행한 사람들이 대장급들이라 입도 벙긋 못하고 죽기살기로 따라간다.........역시! 나는 후미 쪽에 설걸~~ 괜히 앞에 왔어!!!

   
(성에 낀 안경의 럭셔리함!!!)

 구왕봉을 가는 암릉길! 오르고 또 오른다. 숨이 턱에 찬다. 그런데 이는 구왕봉 내리막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빙판은 아이젠으로 해결이 가능하나 습설은 지지력이 약해 자꾸만 밀린다. 조심 조심 밧줄에 의지하여 한없이 내려오니 "지름티재"라는 푯말이 보인다. 여기서부터 희양산 오르막이란다.
  
(웅장한 희양산의 위용!!!) 

7. 밧줄과의 씨름!

 희양산 정상 근처의 밧줄구간도 위험하기로 꽤 유명하다. 지난 번 대야산 직벽의 후유증인지 밧줄 구간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긴 듯 하다.

 어찌 우회로는 없는 지 물어 봐도 별무 반응! 일행은 4명이다.(나,강모대장, 남여 총무) 남자 총무가 아이젠을 신으란다. 그런데 다시 차기도 귀찮고 또 강모대장이 아이젠을 차지 않고 올라간다(사실은 빠뜨리고 안가지고 왔다!). 그래서 나도 그대로 올라가는데......
 
 맨 첫 코스에서부터 발이 미끌린다. 습설 상태라 신발 바닥이 지지가 되지 않는다. 당연히 팔과 어깨, 손가락은 금새 힘이 빠지고.......뒤에서 남자총무가 있는 아이젠도 안 찬다고 마구 혼내킨다. 바위 틈에 몸을 의탁하고 아이젠을 꺼내 어렵게 착용하였다.
  
 여자 총무님이 나를 앞질러 먼저 가고......여자 총무님도 힘이 드는지 중간 중간 쉬어 간다. 나도 여자 총무님의 꽁무니를 따라 중간에 물과 양갱으로 요기를 하면서 오르고 또 오른다. 아이젠을 신은 상태에서는 이런 습설 보다는  차라리 빙판이 낫단다. 여러 개의 밧줄을 바꿔 가며 드디어 마지막 턱을 넘어서니........

 표지판이 서 있다. 좌측은 대간 길, 우측으로 가면 희양산 정상이란다. 500m만 가면 된단다. 이왕 온 김에 희양산 정상을 밟고 가잰다.슬쩍 여자 총무님이 너무 지쳐 보인다고 퉁쳐 본다. 아싸라비아~~~모두들 그냥 왼쪽 백두대간 길로 가기로 순순히 응해 주었다.(휴~~~처음으로 작전 성공!) 
 
 
8. 은티마을을 향하여.

 최고 고비를 넘었다는 안도감에 마음은 가뿐하였지만 몸과 다리는 한없이 무거웠다. 진창길과 낙엽길, 또 눈과 빙판길이 교차하였다. 지루한 하산 길....틈틈이 오르막.......갑자기 들려온 계곡의 물소리가 그렇게 반가웠다. 차가운 계곡 물에 세수 한 번 하고 물을 한 모금 마시니 피로가 눈 녹듯 스러진다. 그래 바로 이 맛이야!! 나름 호기도 부려본다.
 
 은티 마을 푯말에서 일행과 사진 한 컷하고 주차장에 도착하니 오전 11시다. 총 8시간 30분의 강행군. 마침 주차장 근처에 으슥한 냇가가 있어 여벌 옷을 챙겨 들고 가벼운 알탕(계곡 물에 알몸으로 뛰어드는 것, 목물)을 하고 나니 온 세상이 내 것 같다.
 
 오늘의 후식은 산행의 단골(Old & Best) 메뉴 김치찌개이다. 정말 입에 쩍 달라 붙는다. 시원한 소주를 곁들이니 모든 사람들이 갑자기 이웃 같고 살갑게 느껴진다. ~~~~아~~아~~~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귀향 버스 길!  죽음보다 깊은 잠에 달콤하게 빠져 들었다.zzzzzzzz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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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은 날 저녁시간 평촌 농수산시장!
기분 좋은 나른함 속에........ 믿거나 말거나 갓 잡아 올렸다는 찰 진 흑산 홍어(바코드 부착!)를 안주 삼아 오랜 친우들과 이야기 꽃을 피우고.......또 살아가는 희노애락을 함께 나누며..........우리들의 중년은 그렇게 익어가고..................................(끝)

PS. 지난 백두대간 산행기 1편에 사진 추가했슴돠!!!(관심 있으신 분 즐감 하시길......)